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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12. 2020

특수학교의 조금은 다른 예비소집일

별이의 세상에 내딛는 그 첫걸음, 예비소집일 풍경

 2020년은 둘째 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이다. 2013년생인 별이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되었다. 별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별이의 말이 또래보다 유난히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어지는 발달검사와 여러 의사, 치료사, 임상병리사들과의 만남 끝에 별이는 발달장애, 그중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별이의 불안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히 높으며,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별이는 결국 자폐스펙트럼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복합적인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다섯 살 유치원에 입학할 때 별이는 일반 유치원이 아닌 병설유치원 특수반에 입학하게 되었고 별이의 눈높이에 맞는 특수교육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비장애 아이들과의 통합 수업을 받으며 3년간 유치원에 잘 다녔다.

 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어떤 학교에 보낼지 작년 내내 오랜 시간 고민을 했고, 결국 나는 별이를 근처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9월 특수학교에 입학원서를 냈고 11월에 입학이 허가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별이가 앞으로 다니게 될 특수학교의 예비소집일 날이었다.

 별이가 다닐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그 이후 2년간의 직업교육과정까지 갖추어져 있는 공립학교였다. 별이는 오늘 초등학교 입학생으로서 취학통지서를 들고 엄마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일단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직업교육과정까지 쭉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12년 이상 별이가 다니게 될 그 학교는 북한산 밑 공기 맑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낼 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이제 진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이랄까. 남들보다 느리고 어려움이 있는 내 아이를 험한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시기가 드디어 온 것이다. 그 불안함과 두려움은 입학을 앞둔 몇 달간 부모를 괴롭힌다. 그래도 나는 일찌감치 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로 그러한 불안감에서는 다소 해방된 편이다. 일반 학교의 특수반으로 가기로 결정한 별이의 친구 엄마들은 만날 때마다 한숨이다.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학교생활을 하게 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엄마와 아이는 받을 것인가. 아무도 대신 싸워줄 수 없는 싸움에 임하는 것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감정의 맷집을 단단히 챙기고 그 날만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첫째 봄이의 예비소집일도 경험했지만, 별이의 학교는 일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과는 그 풍경이 달랐다. 일단, 입학하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한산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1학년의 학급은 두 학급이고, 한 학급에는 6명의 학생이 배정된다. 중, 고등학교의 신입생 부모들도 오늘 예비소집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봤자 20명 내외이다. 7-80명이 북적였던 봄이의 예비소집일에 비해 학교 운동장은 한산했고, 학교도 조용했다. 그러나 일단 소집 장소에 들어가니, 예상외의 소란함이 있었다. 우리 별이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고, 어딘가에 모여서 얌전히 앉아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닌 것이다. 엄마들은 각자 아이들 손을 꼭 잡고, 서류를 내고,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진단검사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특수학교의 예비소집일에는 부모를 위한 오리엔테이션과 동시에 아이의 반편성을 위한 발달검사가 실시되었다.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엄마들은 시청각실로 가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발달검사를 위해 준비된 교실로 갔다. 엄마와 분리되면 힘들어하는 아이,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 등 여러 종류의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와 엄마가 헤어지는 복도 역시 정신없고 다소 소란스러웠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를 맡기고 시청각실로 들어섰다.


 특수학교에는 많은 교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아이 6명당 1명의 특수교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그 외 교과 선생님들도 계시고, 실무사들, 공익요원들까지 거의 아이 수에 육박하는 교사 및 인력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의 인사와 설명을 들으며 다소 안심이 되었다. 우리 아이가 누군가의 눈에서 벗어나 혼자 헤매는 일은 적어도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행복과 자립이었다. 부모와 아이와 학교과 협심하여 아이를 사회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독립된 사람으로 키우는 것. 교장선생님이 ‘재산세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말씀을 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구든 달갑게 내지 않는 재산세.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내는 것이 목표다. 직업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래도 성공한 삶이다. 이 세계에서는 말이다.

교과과정, 학교 운영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학교 버스 노선에 대해 협의를 마칠 무렵, 교무부장 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예비소집일 진행에 차질이 생겨 알려드립니다. 원래 오리엔테이션 후 학교 시설 탐방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달검사를 생각보다 일찍 마친 아이들이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학교 시설은 다음에 돌아보시고, 지금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들은 우르르 일어났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기다리는 일이다. 선생님들이 애써주시고 있겠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고, 아이들에 대한 파악도 아직 전혀 안된 상태이니 얼마나 난리 법석이 났을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그 어떤 엄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도 서둘러 별이가 있는 교실로 향했다.

 별이는 검사를 잘 끝냈는지 교실에서 놀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똑바로 말했다고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도 한글을 읽고, 혼자 식사가 가능하며, 자기 이름 및 짧은 문장을 쓸 줄 아는 별이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 중 나름 기능이 좋은 편에 속한다. 별이의 유치원 선생님은, 별이가 유치원 일반학급 아이들보다 한글을 더 잘 읽는다면서(그 유치원에는 유난히 한글이 늦은 아이들이 많았다.) 특수학교에 가면 꼭 전교회장이 될 감이라고 농담 섞인 말씀을 하셨었다. 보다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별이의 자존감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특수학교로 보낸 것이기에, 오늘 검사하신 선생님의 칭찬에 흐뭇해졌다. 별이의 손을 잡고 건물 로비로 나왔다. 앞으로 별이가 타고 다닐 노란색 스쿨버스가 보였다. 버스를 너무도 좋아하는 별이는 버스를 보자마자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늘 누나가 타는 스쿨버스를 부러워했는데, 통학하며 스쿨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별이의 행복도는 높아질 것이기에 다시 한번 마음이 놓였다.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의 차를 타고 별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나는 소파에서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역시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은 나에게는 큰일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반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 해낼지. 여전히 걱정되는 일은 한두 개가 아니다. 별이는 이제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디뎠고, 나는 별이의 보조에 맞춰 별이의 속도대로 별이와 함께 세상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별이가 재산세를 내게 되는 그 날까지. 내 도움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그 날까지. 어쩌면 평생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별이도 나도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고 상처를 받겠지만, 세상에는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도와주고 힘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요 몇 년 동안 알게 되었다.


 세상의 틀에 별이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이의 장애가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자들의 시선이라고. 힘들기는 하지만 우린 불행하지 않으니 힘내자고 말이다. 그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별이의 초등학교 생활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 별이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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