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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y 21. 2020

그림 한 장의 힘

그림 한 장으로 인해 하루가 조금 더 나아졌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지는 3년째다. 이사 들어올 때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집을 사서 들어오느라 있는 돈을 다 끌어다 쓴 탓에 인테리어 공사를 따로 맡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벽지도 청계천에 가서 직접 고르고, 인테리어 필름업체도 온라인 발품을 찾아 개별로 맡겼다. 준공 후 10년이 되어가는 데다 예전에 어린이집이 있었던 집인지라 여기저기 손댈 데가 많았지만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이사하느라 많은 것을 포기했었다.

 막상 2년쯤 살다 보니 아쉬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베란다만큼은 꼭 확장하고 들어왔어야 했는데.. 가스레인지는 낡았고 싱크대 상판엔 금이 가 있었는데.. 수납용 붙박이장도 설치했어야 했고, 욕실 욕조에 낀 때도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 모든 곳은 집에 사람이 살면서 공사를 감행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부분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사 오면서 못 바꾼 식탁을 바꾼다던지, 늘어가는 아이들 책을 꽂을 책장을 더 구입하는 정도였다.

 2년 전까지 살던 전셋집의 벽에는 누리끼리한 벽지가 발라져 있었고 벽과 천장을 연결하는 몰딩과 집안의 모든 문짝은 그 유명한 체리색이었다. 그래서 새집에 이사오며 이것만은 반드시 사수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벽지와 흰 몰딩, 회색빛의 문이었다. 청계천 5가의 벽지 가게에 가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벽지는 거실은 흰색, 침실은 연회색, 아이들 방은 연분홍색과 연하늘색이었다. 예전 집 벽에 주렁주렁 걸어놓았던 아이들의 백일사진, 돌사진 액자, 결혼사진 액자도 베란다 한쪽으로 옮겨졌다. 여전히 아이들 장난감의 늪에 빠져 거실 정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지만, 벽만큼은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미고 살고 싶었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맞은편 벽을 바라보니 모던하고 심플한 내 주방 벽이 그날따라 유난히 휑하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이 깔끔한 게 좋았는데 그날따라 마치 병원의 벽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요즘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고, 아이들과 씨름하며 같은 말을 수십 번씩 반복하며 살다 보니 더더욱 집안 구석구석의 보기 싫은 부분이 부각되어 보이는 현상이 생겼다. 인테리어 물품을 파는 쇼핑몰을 뒤적거리다가 난데없는 그림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수십 번을 고민하고 망설였겠지만, 그날은 무슨 바람인지 A4의 4배 크기인 그림 액자를 덜컥 주문했다. 유명한 화가 그림의 복제라는데, 평소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그저 "예뻐서"라는 이유가 전부였다. 어제 드디어 그림이 왔다.

 화가는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활동하다 작고한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였고, 평생 비슷한 류의 그림을 그렸다는데 생전에 이미 작품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색채로 내면의 감정을 표현했다는데, 그 감정의 실체는 자세히 알기는 어려워도 무언가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것을 그릴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조금 짐작이 갈듯도 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고 울어주는 관객이 가장 고마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색의 조합이 다인 그의 그림이 오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면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단으로 그림과 색을 절묘하고도 섬세하게 잘 조화시키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그에게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의 그림이 예뻐서 좋았지만 말이다.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 식탁 옆 벽 가운데에 그림을 걸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연하늘색과 파란색의 그림은 마치 우리 집에 바다로 난 창이 생겨난 듯 벽과 주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우울한 가운데에서도 마음 안쪽의 평정심을 찾아가려 하는 의도가 나에게는 느껴졌다. 온라인 개학을 맞은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그림 같았다. 혼란스럽고 우울한 나는 그림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지금, 잠깐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선을 정면에서 5도만 돌려도 엉망이 된 거실과 주방,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투닥거리는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그림을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평화롭고 싶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동기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의 글이 내 마음속에 깊이 울렸고, 어두운 곳에 주저앉아있던 나는 그 글로 인해 일어서서 한 발짝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같은 슬픔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비단 글뿐만은 아니었다. 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사진도, 그림도 같은 울림이 있었다. 예술의 힘이란 공감의 힘이었다. 좋은 작품들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만들어졌어도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림 한 장으로 인해 하루가 조금 더 나아졌다. 지금의 나는 엄청나게 불행하고 힘들지는 않지만, 연속되는 지친 나날들로 인해 분명히 피로감이 쌓였었는데, 그림을 보고 앉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주문한 커피와 달달한 와플을 먹으니 잠시 주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림을 사길 잘했다.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 보내는 내 식탁의자. 여기에 앉아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이 글을 쓴다. 45,000원을 들여 산 저 액자는 그 가치 이상을 하는 것 같아 흡족스럽다. 빨리 자유로와져서 저 그림이 연상시키는 바다에 가고 싶다. 그때까지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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