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볼을 샀다.
상처를 준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힘껏 가격하고 싶은 마음에.
펀치볼을 샀다. 네이버에서 검색하자마자 제일 위에 뜨는 것으로 후다닥 샀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봄이의 팔에서 그 자국을 발견한 것은 어제였다. 며칠 전 소아정신과 상담도 잘 다녀왔고, 풀 배터리 검사를 진행한 임상병리사 선생님의 소견도 나쁘지 않았다. 불안이 높은 아이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능도 남다르게 높다고 했다. 계속되는 의심과 질문들은 머리 좋은 아이들이 불안할 때 보이는 특징이라 했다. 불안을 분노로 표출하는 아이, 과잉행동으로 표출하는 아이도 있지만 봄이는 끝없이 해답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매일 반복되는 질문, 기억의 끝없는 복기도 그런 이유로 설명이 되었다. 죄다 물어뜯어 피가 맺히던 손톱도 이젠 보이지 않길래 잠시 마음을 놓았었다.
팔에는 반원 모양으로 피멍이 들어있었다. 이빨 자국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그건 봄이가 자기 팔을 물었다는 증거였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되도록 담담하게 이야기하려 노력했다. 책망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얼굴엔 아마도 당황과 슬픔이 서려 있었을 것이다. 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자꾸 지니까 속상했다고. 내 몸이 자꾸 잘못하는 것 같아 내 머리가 벌을 주라 했다고. 이렇게까지 자국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한 번 문 자국이 아니었다. 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구나 짐작했다. 아프니까 하지 말자고, 네 몸도 소중하다고. 얼마나 아팠겠냐고. 봄이를 다독였다. 내가 슬퍼 보였는지, 팔의 검붉은 자국이 생각보다 진해서 저도 무서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노라고. 이젠 안 그러겠다고.
주말 내내 여전히 잘 웃고 함께 떠들었다. 가족들이 같이 산책도 하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신나게 탔다. 에너지를 많이 분출했다고 생각했다. 멍든 팔에 약도 발라주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봄이는 종일 수업이 많이 있었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사립초등학교인 봄이네 학교는 수업이 많았다. 9시부터 4시까지 학교 수업을 꼬박 줌으로 받고, 4시 반부터 6시까지 또 영어 학원 수업도 온라인 실시간으로 들었다. 겨우 수업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 신나게 게임을 하는 걸 보고 나도 저녁을 준비했다. 한참 후 봄이의 손목에서 또 빨간 자국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게임하다 잘 안되어서라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봄이의 이야기의 끝에는 그 아이들이 있었다. 작년에 학원에서 있었던 일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었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2명의 상급생 여자 아이들. 봄이를 괴롭힌 아이들이다. 평온해 보이는 봄이의 얼굴 뒤에 숨어있던 분노가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게임에 졌다는 것을 핑계 삼아 수시로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봄이가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은 스스로 뿐이었던 것 같았다. 예전에 놀이치료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감정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종이를 북북 찢어도 좋고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발로 차도 좋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도 속으로부터 끓어오는 무언가를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눈에 보이는 것 중 가장 푹신한 인형을 온 힘을 다해 집어던졌었다.
키즈 펀치볼로 검색해보니 의외로 많은 종류의 펀치볼과 샌드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상품평도 꽤 많이 있었다. 집에만 머물러 있는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듯했다. 눈에 띄는 상품평이 하나 있었다.
'상처가 있는 우리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이가 자주 치고 놀아요.'
펀치볼이 꼭 필요했던 아이가 거기도 있었구나 싶었다. 글러브 2개까지 추가해서 냉큼 결제했다.
초연하려고 했다.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낙관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방심하면 절망이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게 역시 삶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아이를 통해 할퀴는 상처는 너무 맵고 쓰리다. 유별나게 고된 육아라고, 오늘도 친정엄마와 헛웃음을 날렸다. 정작 당사자인 두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자기를 사랑하냐고 오늘도 품에 안겨 웃는다.
엄마이기 때문에 맥을 놓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내일도 우리 아이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엄마인 나는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제 또 새로운 작전을 세우고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허물어진 예전의 성을 마음에 두지 말고 말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때때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손을 한참 움직여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는 한다. 할 일이 쌓여있지만 개의치 않고 매듭팔찌를 만들고 비즈를 줄에 꿴다. 머리가 과부하가 걸렸을 때에는 단순노동이 단연 최고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잠시 움켜쥐었던 것들을 놓아두고 글로 탈탈 털어내고 나면 머릿속이 비워진다. 복잡한 생각들을 하얀 화면에 좀 덜어내는 기분이다. 그러고 나면 또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달래서 재우고, 깨우고, 먹일 힘이 좀 생길 것이다.
뻥 하고 힘차게 한 번 날려보자. 펀치볼이 오면 나도 좀 쳐봐야겠다. 이렇게 해놓고 어디쯤에서 잘 살고 있을 누군가의 머리통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어디서 이런 바이러스를 인류에게 전염시키게 한 어떤 인간의 싸대기라고 상상해도 좋겠다. 마구 치다 보면 아이들 안의 것도, 내 안의 것도 좀 날아가겠지. 내일부터 택배 아저씨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