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베었다.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
"아앗, 안돼!!"
이미 늦었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서는 선홍빛 핏방울이 번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식구들이 놀라 싱크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별일 아냐. 조금 베었어."
상처는 다행히 깊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0.5cm 정도. 원흉은 참치캔이었다. 저녁 식사에 큰 아이 봄이가 좋아하는 참치캔으로 반찬을 만들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려는데, 미끌거리는 기름 투성이 빈 참치캔이 영 거슬렸다.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캔을 닦았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스윽. 캔 뚜껑을 떼어낸 날카로운 표면에 넷째 손가락이 닿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 느낌. 연약한 피부는 쇠로 된 캔 앞에서 견디지 못했다.
상처는 작았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에 덮고 꾹꾹 누르는 휴지의 표면을 끈질기게 붉게 물들였다. 어쩌자고 오늘은 고무장갑도 안 끼었던 걸까. 평소엔 솔로 닦던 것을 왜 덥석 수세미로 닦아 이 지경을 만든 걸까. 지혈을 하느라 설거지를 멈춰야 했다. 내일 등교하는 봄이 숙제도 챙겨야 하는 바쁜 저녁 시간이 허비되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를 씻기기도 해야 한다. 손에 물 닿을 일이 많은 저녁시간, 다치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었다.
"엄마, 너무 아프겠다."
휴지에 묻은 피를 보더니, 봄이가 눈이 그렁그렁한 채 물었다. 제 손도 아닌데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응? 별로 안 아파."
"그래도 피나잖아. 아파. 무서워."
열 살이나 먹었어도 피는 무서운가 보다. 하긴, 나라도 누군가 내 앞에서 손을 베었다면 꽤나 호들갑을 떨었을 것 같다. 특히나 아이들이었다면. 사실, 손을 벤 순간에는 전혀 통증이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곧 아프리란 것을. 말초신경의 통증이 뇌에 보고되는 그 짧은 찰나가 지나고 나니 비로소 손가락이 쓰렸다. 예상했던 통증 딱 그만큼이었다. 이후 지혈을 한다고 손을 꽉 눌렀더니 쓰라림은 사라지고 누르는 손의 육중한 압력만 느껴졌다. 밴드를 붙이고 나니 그마저도 사라졌다.
사실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아픔이 아니었다. 오른손의 손가락을 베임으로 인해 바쁜 저녁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꼬이고 있었다. 오늘뿐이 아닐 것이다. 내일도 종일 둘째 별이를 여러 번 씻겨야 하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고무장갑을 끼겠지만, 욕실에선 그것도 어렵다. 분명 축축하고 쓰릴 것이다. 성가시고 불편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온통 신경이 거기에만 쓰여 다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봄이는 오직 내 손의 상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피는 계속 나오는지. 얼마나 아픈지. 사실 지금 아픈 건 손이 맞는데, 나는 왜 손이 아닌 것에만 신경을 썼던 걸까. 문득 다친 손이 조금 불쌍해졌다. 피도 났는데. 아픈데. 내 몸의 아픔이 아니라 나는 왜 다른 것들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가 된 이후 그런 일이 많았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프다는 기준은 몸에 증상이 있는 게 아니었다. 평소대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통증이 있거나 기운이 없더라도, 아이를 픽업하고 등하교를 시킬 수 있고, 어떻게든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여 밥을 먹이고 빨래와 설거지를 해낸다면. 씻기고 머리를 말려줄 수 있다면. 그러면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었다.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기운도 며칠 있으면 생길 테니까. 그래서 온전히 내 몸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먼저 드는 생각은 '아, 너무 아프다.'가 아니라, '내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였다.
몇 년 전 집에 설치해둔 안전문에 맨발을 부딪혀 발가락 뼈에 금이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지금 보다 한참 어렸다. 하루에 수도 없이 집안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는 발가락의 통증도 통증이지만, 뭐 하나 할 때마다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결국 다친 발가락보다,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다른 근육들, 장딴지, 허벅지, 팔이 더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몸을 움직여야 했고, 여전히 반깁스 한 발로 밖으로 다녀야 했다. 시댁 친정 부모님 중 친정 엄마만 유일하게 남아계시고, 급할 때 아이를 맡아줄 형제자매도 없는 우리 집이었다. 내가 드러누우면 친정 엄마나 남편이 두배의 육아의 짐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마냥 아파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는 다치지 말아야겠다'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로 아프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는지가 가장 먼저 신경이 쓰였다. 아픈 건 그다음 문제였다.
기계로 친다면, 가동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해야 하나. 몸이 아파도 그 아픔을 돌아봐 주지 않았던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마치 부하 직원이 다쳤어도, 업무에 지장이 있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가지는 악덕 상사 같은 느낌이다. 이러다 어느 날 몸에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이면 ''아, 진짜 못해 먹겠다!!'라며 파업을 해버릴지도 모른다. 내 몸을 정작 아끼고 예뻐해 줄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결국 밴드를 붙이고 고무장갑을 낀 채 남은 설거지를 했고, 미용실 직원이 염색할 때 끼는 듯한 라텍스 장갑을 낀 채로 큰 아이를 씻겼다. 대안은 없었다. 다행히 피는 멈추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손을 벤 이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픔을 아픔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해야 할 일은 늘 쌓여있고, 여전히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가지만, 다음에 또 어딘가가 아프면 제대로 좀 앓아누워봐야겠다. 그게 내 몸에게는 잠깐의 휴식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프지 않은 게 제일 좋겠지만, 아프면 있는 그대로 아파해야겠다. 통증은 결국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 테니까. 묵살하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에게도 늘 신경을 기울여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