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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27. 2019

앤의 진주

삶이 어둡고 캄캄할지라도 그 속에는 작은 진주알같은 행복이 숨겨져있다

마릴러,

결국 즐겁고 행복한 날은
특별히 멋진 일이나 놀라운 일이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가 한 알씩 살그머니 실에서 미끄러져 내리듯
단순하고 조그만 기쁨을 잇달아 가져오는 하루하루를 말하는 것 같아요.

< Anne of Green gables 중에서>


 ‘빨강머리 앤‘에서 앤이 마릴러에게 했던 이야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갈 예정이었지만, 매튜 아저씨의 죽음으로 인해 진학을 포기하고 마릴러와 함께 초록 지붕집에 남기로 결정한 후의 이야기다. 그때 앤은 겨우 스무 살도 안된 아가씨였다.


 행복에 대해 항상 생각해왔다. 고등학교 시절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 했다. 평생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실패하지 않고,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가족.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마흔이 되기 전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나는 불행의 끝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다시는 행복 같은 것이 내 주변에 찾아와 줄 것 같지 않았다. 인생에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있다면, 나는 그 곳에서 이미 불행한 쪽으로 들어서버린 기분이 들었다. 다시는 행복한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저쪽 길로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내가 걷는 길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종종 내 발 밑에서 빛을 내며 내 눈길을 끌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 반짝임이 아예 없어졌던 적은 없었다. 글쓰기 모임에 등록하게 되었을 때도, 별이가 앞구르기를 한 날에도 그 반짝임을 보았다. 앤의 이야기처럼, 진주가 한 알씩 살그머니 실에서 미끄러져 내리듯. 그 단순하고 조그만 기쁨은 잇달아 내 삶을 반짝이게 했다.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 따위는 없다. 삶 속에서 그 작은 진주를 얼마나 발견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일 뿐이다. 바라건대, 그래도 대체로 행복한 편이면 좋기는 하겠다. 단순하고 조그만 기쁨이 눈에 보이도록, 눈앞이 캄캄해지는 어려움이 너무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 눈을 크게 뜨고 발 밑을 찾아보고 싶다. 내가 놓치고 있는 조그만 기쁨은 없는지.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작은 행복을 잘 발견하고 영위하고 있는지.

 어린 나이의 앤이 발견한 작은 기쁨에 대한 깨달음이 결국 앤을 평생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었듯이. 나도 주어진 내 길을 되도록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불행하고, 어느 순간, 모두 행복하다. 다만 그 시기가 서로 다를 뿐이다. 부디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앤의 진주를 되도록 많이 모아서 미소 짓고 사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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