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신전이 제국의 박물관에 남은 이유
영국박물관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여러 명작들이 있다. 이어 다루게 될 로제타석, 아시리아사자부조상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놓치면 안 되는 첫 번째 작품을 꼽자면 파르테논 신전이라 할 수 있겠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만 다뤄보고자 한다. 건축학적, 조각적 측면에서의 미적 가치는 더 큰 의미를 놓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르테논은 "처녀의 공간"이라는 뜻이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테나 신은 지혜와 전쟁,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기에, 아테나 신의 신전은 말 그대로 박물관의 대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그 수호도시 아테네에 있는 게 아니라 영국 런던에 있다는 게 그 역사성에 큰 의문을 품게 한다.
이 파르테논의 걸작을 영국박물관으로 가져온 이는 다름 아닌 영국의 귀족 엘긴 백작이다.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튀르크의 대사로 파견 나가 있던 엘긴 백작은 파르테논 신전을 해체하여 영국으로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저 사진에서처럼 머리를 또다시 분해되어 개별 소장되거나 팔려나가고, 신전을 이루는 일부만 영국박물관에 팔게 된 것이다.
이 파르테논의 대리석 작품을 두고 "엘긴 마블" (엘긴의 대리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엘긴의 행태의 정당성에 대해선 아직까지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다.
그리스는 수십 년째 파르테논 신전의 반환을 요청하고 있고,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을 지어 파르테논 신전을 보존할 공간까지 마련해 놓고 있지만, 영국은 여전히 더 많은 전 세계인이 이 작품의 위대함을 감상하려면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는 게 더 좋다는 입장으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과연 어떤 입장이 맞을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조선왕조의 의궤를 영구 대여라는 형식으로 반환받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런던에 있어야지만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와 가슴으로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료로 영국 박물관을 개방하고 있는 영국의 정책은 일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기여하고 있다고도 보이기에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과연 어떤 입장이 맞는 것인가? 영국박물관에 이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에 우리는 한눈에 파르테논 신전과 로제타석과 앗시리아 사자 부조상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2천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전쟁과 약탈, 파괴, 자연에 의한 부식을 견디는데 돌만한 것이 없다. 그리스의 선조들도 돌의 영원성에 대해 그 가치를 알고 돌로 그 작품을 만든 게 아닐까?
고대의 작품은 대부분 돌만 남아있다. 로제타석, 앗시리아 부조상 모두 돌덩어리이다.. 어떤 작품은 그 돌덩어리에 글이 새겨져 있고, 어떤 작품은 그 돌덩어리에 사자 사냥을 하는 모습을 그림처럼 남겨 두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 자체가 조각 작품으로 고대 그리스 사회가 대리석을 다루는데 얼마나 능숙했고, 그 시대의 경제적, 사회적 역량이 그런 신전을 만들 만큼 융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유적지가 있는 도심 중앙 높은 지대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 가야 볼 수 있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지켜주었던 아테네의 도심 중앙에 지어진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신전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과 박물관에서 몇 개 ( 몇 개의 돌덩이라고 표현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지만.. )의 돌덩이만 떼 와서 전시하면서 안 그래도 손상당할 대로 손상 당한 파르테논 신전의 훼손을 정당화하고 있는 영국박물관의 전시 행태를 보고 있자면 이 상황 자체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고대 그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각각의 신들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스 도시 국가 중 가장 융성한 문화를 뽐낸 아테네는 이름 그대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모셨고, 신의 뜻을 묻는 신탁의 도시 델포이는 태양과 예언의 신 아폴론을, 아테네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스파르타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모시는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제우스 신을 모셨던 올림피아라고 할 수 있겠다. 올림피아에서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4년마다 모여서 제우스를 위한 축제를 벌였고, 각종 육상경기등을 치르면서 잠시동안 전쟁을 멈추는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으며, 이는 오늘날의 올림픽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이 각각의 수호신을 두고 있지만, 그리스 신화의 핵심을 이루는 제우스, 헤라 등을 포함한 올림푸스 12 신은 공통으로 모시면서 지냈다.
어찌 보면 그리스신화 중심의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는 오늘날 EU의 기원이라고도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가를 이루지만 공통의 종교적, 신화적 규범 아래 뭉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처럼 오늘날 EU도 고대 로마제국과 가톨릭으로 이뤄진 종교적, 역사적 공통성 위에서 다양한 국가들이 유럽이라는 하나의 체제로 단일화된 거라고 볼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 문명 중 가장 뛰어난 문명을 뽐낸 아테네의 문명의 결집체가 파르테논이라는 데는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다. 그 규모와 정교함, 예술적 아름다움까지 인류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고, 유네스코 엠블럼, 영국박물관의 건축양식도 파르테논 신전 양식을 따온 것이니 파르테논 신전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박물관의 자존심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영국박물관 자체가 고대그리스로부터 이어져온 문명에 대한 헌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유적의 돌덩이만 남은 파르테논을 복구하겠다는 시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 과연 이 파르테논의 유적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일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