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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II_로제타석, 문명을 되살린 언어해독기

3천 년 이집트 문명의 복원의 이야기

by 은퇴설계자

무엇이 로제타석을 이렇게 뜨겁게 달구었나?


영국박물관에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루는 유물이 있다면 로제타석일 것이다. 유리 케이스로 덮인 채 영국박물관 서쪽 회랑의 한가운데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로제타석은 기원전 196년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의 후손 프톨레마이우스 5세의 즉위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비석으로 우리로 치면 용비어천가 비슷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기원전 196년이란 시대이다. 이 시대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 측근들에게 나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프톨레마이오스였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백 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3백 년 가까이 이집트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로제타석은 그러니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당시 이집트의 지배계층은 그리스인들이었고 로제타석엔 그리스인의 언어가 새겨져 오늘날 이집트 문명을 복원하는 키가 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로제타석은 그리스어(헬라어)와 이집트의 상형문자 (제사장 등 이집트 성직자들의 언어), 이집트 민중 문자 3개 언어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리스어를 공부했던 언어학자들은 그리스어를 해독의 키로 삼고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

이집트 문명 해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이 로제타석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시기였던 1799년에 발굴되었는데, 이 당시 이집트 원정 자체가 프랑스혁명 이후 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꾸게 된 루브르 왕궁을 채우기 위해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프랑스는 닥치는 대로 이집트의 유물들을 파리로 옮기는 게 열중했는데, 이 귀한 로제타석은 왜 프랑스가 발견하고서도 영국에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여기엔 로제타석을 둘러싼 여전히 치열한 영국, 프랑스의 경쟁의 이야기가 있다.


대륙에서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은 해전에서만큼은 넬슨의 이끄는 영국 해군의 장벽에 부딪혀 승전보를 올리지 못했고, 그 시작이 바로 이집트를 둘러싼 나일 해전이었다. 프랑스군은 나일 해전의 패배로 인해 보급선이 끊겨 이집트를 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고, 패퇴의 바쁜 와중에 그 무거운 로제타석을 챙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신 로제타석 탁본(비석의 글을 종이에 복사하는 것) 여러 벌 떠서 프랑스 본국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따로 챙겨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군이 발굴한 로제타석은 영국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영국은 무사히 로제타석을 본국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3개 언어로 쓰인 로제타석의 내용을 해독하고, 특히 당시 아무도 해독해내지 못했던 이집트 지배층의 언어였던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언어 천재 샹폴리옹의 활약


패전 속에서도 어렵게 마련한 로제타석 탁본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이집트 문명의 기원을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해독을 위한 연구에 몰입하게 된다.


이집트 상형 문자 해독이 이뤄진 오늘날에야 그 해독이 왜 어려웠는지 이해가 되지만, 당시는 이집트 상형 문자를 뜻글자 (표의문자)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해독 가능한 그리스어를 기반으로 아무리 매칭을 하려 해도 이집트 상형문자의 뜻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한다.


로제타석을 이루는 3가지 언어를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히에라틱문자(이집트 상형 문자, 제사장 등 이집트 지배계급의 문자), 데모틱문자 (이집트 민중의 문자), 콥트어 (그리스 알파벳 기반의 그리스계 왕실의 문자)로 이뤄진 문자였고, 샹폴리옹은 콥트어를 마스터하였기에 이집트 상형 문자가 단순한 표의문자가 아니라 음가를 가진 표음문자의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로제타석은 영국의 것이었지만, 이집트 상형 문자의 해독은 프랑스의 언어 천재 샹폴리옹 덕분에 로제타석을 처음 발굴한 프랑스의 몫이 되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겠는가?


로제타석을 둘러싼 영국-프랑스-이집트의 삼국지


아직도 로제타석이 있어야 할 곳에 대해 프랑스와 이집트는 자기가 가져야 한다고 틈만 나면 영국을 압박한다고 한다.


물론 영국은 콧방귀도 안 뀌지만 프랑스는 애초에 자신들이 발굴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자기네가 애초의 주인이라는 입장이고, 이집트는 이집트박물관에 유일하게 복사본의 로제타석을 전시하면서 영국을 압박하고 있다.


돌덩이 하나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던 3천 년 역사의 이집트 문명의 실체를 밝혀내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아직도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는 가자 지구의 피라미드의 신비함은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함으로써 이집트 문명의 가진 행정력과 풍요로움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문명의 힘을 바탕으로 건축된 것이라는 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저 미지와 멸망한 문명의 세계였던 이집트가 찬란한 문명의 나라로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이 이집트의 현재의 모습이다. 과거 찬란했던 문명을 가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 환경적인 조건은 동일한데, 왜 현시대에는 그런 후진적인 나라로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현대의 문명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볼 때 왜 이집트는 자기 땅의 유산들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그 가치를 밝혀내지도 못하게 되었던 것일까?


문명과 문자의 운명론


하나의 언어 공동체가 그 언어를 잃는다는 건 그 역사의 기록과 문화를 모두 잃어버리는 일임을 로제타석을 둘러싼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로제타석을 해독해 내기 전까지 이집트 문명은 한편으로 경외롭기도 하지만,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이교도적인 야만의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지만 이집트 지배 계층의 언어를 해독해 내는 순간 그 수많은 유적 속의 이집트 상형 문자들은 그 의미를 쏟아냈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풍요로운 물질문명 속에서 내세의 삶에 집착할 만큼 깊은 신앙심을 가진 민족임을 알 수 있게 되었고, 3천 년을 그 역사를 이어왔다는 사실 또한 남겨진 기록으로 알게 되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20일 오후 03_00_35.png 챗GPT 이집트 상형 문자 ( 사자의 서 )


한 문명이 3천 년을 지속할 정도라면 그 문화적인 깊이와 탄탄한 정치 행정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3천 년의 역사 동안 오늘날도 감히 해내기 힘든 피라미드와 같은 대규모 건축물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히지만 그런 찬란한 문명도 외세의 반복되는 침략과 약탈 속에서 그 언어를 잊게 되고 잊혀진 언어는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으면서 문명의 기록도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질뻔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왜 이집트 상형 문자는 사라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집트 지배계층, 즉, 제사장들만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문자를 기록한다는 것은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다. 기록물은 권력층의 재산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 권력층은 외세의 침략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을 가진 계층이다.


오늘날 이집트의 글자는 고고학자의 전유물이지, 현재를 살아가는 이집트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문자가 되었다.


이렇게 한순간에 지배층의 문자는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거대하고 탄탄했던 문명이 지배층의 문자와 함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오늘 여전히 그 유적들을 둘러싼 삼국지는 계속되고 있다.


민중을 위한 문자의 위대함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새삼 민중을 위한 만들어진 한글의 위대함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의 것과 달라 백성들이 제 뜻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피지배층이 쉽게 문자로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통상 더 쉬운 통치를 위해 백성을 무지하게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게 보편적인 행태가 아니던가.


나라의 문서를 한글로 쉽게 만들어 행정, 기술 문서를 백성들이 쉽게 접하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면 그 나라의 국력은 나날이 발전해 갈 것이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당시 지배층인 양반들이 들고일어나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 모른다.


이제 겨우 6백 년이 채 안된 문자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인 데다, 조선시대의 역작들은 대부분 한자로 만들어진 유산들이다.


민중을 위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다.


잊힐뻔한 이집트 문명이 복원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로제타석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새삼 한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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