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앗시리아 문명의 다큐멘터리
영국박물관 내 파르테논신전, 로제타석을 비롯한 이집트의 유적들이 있는 서쪽 회랑의 외진 곳에는 고대 앗시리아 문명의 걸작이 조용히 숨겨져 있다.
앗시리아 문명에 대한 내용만 해도 한 가득이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저 사자 사냥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낸 이 유적에 대한 소감만 간략히 적어보고자 한다.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앗시리아 사자 사냥 부조(Assyrian Lion Hunt Reliefs)는 기원전 645년경, 앗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통치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정확히는 기원전 7세기 중엽, 니느웨(Nineveh)의 북궁(North Palace)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부조는 왕의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사자 사냥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왕권의 상징적 과시 행위였다고 한다. 실제로 야생 사자를 풀어놓고 왕이 활이나 창으로 이를 사냥하는 의식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으며, 이는 앗시리아 왕이 야만성과 자연을 지배하는 신의 대리인임을 보여주는 정치적, 종교적 퍼포먼스였다.
이 작품은 1840년대 중반, 오스틴 헨리 레어드(Austen Henry Layard)가 니느웨 유적을 발굴하면서 영국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영국박물관의 가장 주목받는 고대 근동 컬렉션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니느웨라고 하면 성경에서 꽤 유명한 일화가 있는 도시 중 하나다.
물고기밥이 될 뻔했던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를 회개하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던 그 도시가 바로 니느웨 아닌가?
니느웨, 얼마나 포악하고, 타락했던 도시였기에, 하나님의 바로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지만 한 번의 회개 기회를 주겠다고 요나를 불러 니느웨를 회개시키라고 했을까?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같이 타락한 도시를 회개시키려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넓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도시는 망해야 한다며 하나님의 눈길을 피해 도망을 가게 되고 물고기 밥이 될뻔한 채 다시 겨우 목숨을 살려낼 수 있었다.
그제야 본인이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니느웨 성읍에 들어가 회개하라고 외치고 온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씀을 순종하여 회개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사실 성경엔 이다음 이야기가 있다. 니느웨가 구원받음에 대해 정의롭지 못했다고 여긴 요나는 하나님께 절규하며 왜 니느웨 같이 타락한 도시를 살려두냐고 원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구 12만의 큰 도시의 사람과 목축을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냐며 요나를 훈개 하는 것으로 요나서가 마무리된다.
요나서에서 묘사하는 니느웨는 인구 12만의 3일 밤낮을 걸어야 겨우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큰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뻘 되는 시대에 인구 12만의 큰 도시라니 그곳의 문명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그 시대를 되살려볼 수 있는 이 사자 사냥 부조상은 그 당시 앗시리아 문명의 위세를 되살려볼 수 있는 귀한 유적인 것이다.
용맹스러운 수사자를 창 끝으로 그대로 제압하는 앗시리아의 무사들을 보면 이 왕궁의 방문자들은 얼마나 그 기세와 위용에 기가 죽을까.
창에 찔린 사자의 디테일은 그 괴로움이 2천 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늘날처럼 TV가 없는 시대에 TV보다 더 리얼한 다큐가 앗시리아의 왕궁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조는 앗시리아 왕국의 세력을 과시하고, 가장 용맹스러운 동물인 사자도 무참히 제압할 만큼 신이 주신 권능을 부여받은 왕조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선전 영상물이다.
화살 세례를 받아 겨우 숨을 쉬면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자의 모습은 근육의 움직임, 사자의 처연한 표정까지 잘 살려 이 부조상이 왜 뛰어난 작품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영국(잉글랜드)을 상징하는 동물은 사자다. 그래서 영국박물관 입구에도 커다란 사자 석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자의 나라 영국에서 리얼리티가 대단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사자 사냥 부조를 전시하고 있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자는 영국 왕실의 문장에도 사용될 정도로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영국 정부의 양식에도 이 양식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영국박물관에서 앗시리아 사자 사냥 부조를 영국을 상징하는 사자를 사냥하는 상징이라는 의도로 전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뛰어난 오리엔트 문명의 작품 가치를 알아보고 꽤 넓은 공간을 할애하여 전시하는 영국의 포용성을 과시하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사자를 둘러싼 동서양의 이 대조되는 모습은 앗시리아 사자 사냥 부조상을 바라볼 때 서양 문명 중심의 현대 사회를 둘러싼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앗시리아 문명의 실체는 무엇일까? 포악함일까? 용맹스러움일까?
요나의 회개하라는 외침에 순순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은 이방인이었던 앗시리아 문명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꽤나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