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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미술관_II 르네상스의 절정, 보티첼리 이야기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에 대한 이야기

by 은퇴설계자

르네상스의 탄생


중세 신 중심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해체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세상에 퍼뜨리는 결정적인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이다. 시기적으로는 1401년 ~ 1527년 로마 약탈 시기까지를 르네상스의 중심기 (High Renaissance)로 보고 있다. 르네상스는 잠자던 인문주의를 일깨우고 인간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1492년 콜럼부스의 항해가 르네상스의 절정기에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불러일으킨 인간성에 대한 자신감과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신대륙을 향한 인간의 발걸음을 옮기는데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1492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렌초 메디치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또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절정을 알리는 걸작이 있으니 오늘 소개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르네상스의 후원자 - 메디치 가문 이야기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이 있으니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가문의 족보를 이야기하는 건 꽤나 지겨운 일일 수 있지만, 메디치 가문의 족보는 르네상스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중세 말기 피렌체 지역에서 대부업으로 시작하여 은행 사업에 기반을 닦은 조반니 메디치는 그 아들 코시모에게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 라틴어 등 배울 수 있도록 인문학 최고의 선생들을 집안에 불러 그 아들 코시모 메디치를 가르친다. 이렇게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코시모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은행업을 융성하게 키워냈고 그리고 피렌체라는 도시에 인문학적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브루넬리스키 등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이렇게 축적된 재산과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돈의 공화국으로 운영되던 피렌체를 움직이는 실권자이자 유일한 권력이 되었다.


이들은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기반하여 오늘날 유럽 여행의 로망이자 아이콘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를 후원하여 만들게 한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10일 오전 11_35_47.png 챗GPT


이렇게 탄탄한 정치적, 경제적 기반 위에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메디치는 르네상스의 인문학을 꽃피우고, 그 인문학적 표현을 담은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르네상스의 절정 - 비너스의 탄생


기독교 중심의 중세 미술의 근엄함을 떨쳐내고 파격적인 누드의 여신을 등장시켜 그리스 신화를 다시 소환해 낸 작품이 바로 "비너스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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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여신 비너스는 바다거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를 여성을 상징하는 조개가 태워 주고 있는 모습이다.


엄격한 중세 미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신의 누드화라는 파격 이외에도 이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기묘한 모습이 꽤 있다. 기형적인 비너스의 목이 비틀어진 모습이라던지, 그림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안고 있는 클로리스의 비틀어진 몸뚱이와 제피로스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기형적인 클로리스의 다리의 모습은 작가의 실수인지,


이렇게 비뚤어진 외형은 제피로스가 불고 있는 바람으로 인해 왜곡된 것이라는 의견과 당시 보티첼리 그림이 가진 장식성의 특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토의 그림에 살펴본 봉긋한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도 입체감이 살아있다면서 중세 미술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했음을 생각해 보면 그로부터 백 년 넘는 시기에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을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런 누드의 표현이 허용되었던데는 감각적 사랑이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한다는 신플라톤주의적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톤 철학의 인문학적 기반 위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누드의 여신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문학 정신의 회복을 드높인 르네상스에서 이성적 사랑을 상징하는 미의 여신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티첼리의 슬픈 말년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보티첼리의 말년은 평화롭지 못했다.


강력한 르네상스의 후원자였던 로렌초 메디치의 사망(1492년, 콜럼버스의 발견이 있던 해) 이후 피렌체는 프랑스의 공격으로 함락당하고, 그 권력의 공백기에 사보나롤라라는 수도승이 피렌체의 지도자로 등극한다.


사보나롤라는 1497년 "허영의 화형"이라는 의식을 통해 메디치 가문의 사치품과 예술품을 불태우며 과격한 신앙의 세계를 밀어붙였다.


사보나롤라의 과격한 신앙 운동은 당시 교황청에서 조차 걱정할 수준이어서, 그 역시 1498년 화형으로 처형당하게 된다.


보티첼리는 사보나롤라 운동에 빠져 금욕적인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명작들을 불태우는 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게다가 보티첼리의 말년은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예술가의 등장으로 인해 기술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 모두 평가 절하되면서 가난과 쓸쓸함으로 1510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 때 "비너스의 탄생"으로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열었지만 후원자의 죽음, 도시의 몰락, 신앙 운동의 부상 등 부침을 겪으면서 젊은 시절의 패기와 실력을 더 성장시키지 못하고 다빈치와 같은 천재 후배들에게 밀려 쓸쓸한 말년을 보낸 보티첼리의 삶이지만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도 그의 삶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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