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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번외 I_르네상스가 낳은 두 천재, 미켈란젤로

평생 고독과 싸운 천재 미켈란젤로 이야기

by 은퇴설계자

거인 다비드상


성경 속 다비드는 거인 골리앗과 싸우는 작고 용감한 청년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자리 잡고 있는 다비스 조각상(1501~1504)은 5M의 거대한 모습이다.


'David'_by_Michelangelo_JBU05.jfif 다비드상 -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By 미켈란젤로)


과연 이 대리석상의 주인공을 다비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1475~1564)에 앞서 르네상스의 걸출한 조각가 중 하나인 베로키오(1435~1488)는 아래와 같이 다비드 청동조각(1473~1475)을 만들었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 만들어진 다비드상과 이후 미켈란젤로에 의해 거대한 영웅으로 조각된 다비드상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800px-David,_Andrea_del_Verrocchio,_ca._1466-69,_Bargello_Florenz-01.jpg 다비드상 (By 베로키오)

한 손엔 칼과 왼발 아래엔 참수당한 골리앗의 머리가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봐도 다윗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골리앗과의 싸움의 결말을 잘 담아내고 있다.


한편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은 어떠한가? 우선 전장에 나선 전사라기엔 누드가 어색하다.


누가 맨 몸의 누드로 전장에 나선단 말인가? 이 인간적인 비례와 사이즈를 별개로 치더라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윗)상은 다비드라고 명명하기 전에는 다비드로 인식하기 힘들 수 있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먼저 누드로 다비드를 조각한 것은 싸움을 앞둔 다윗의 비장함과 근육의 긴장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승리의 당당한 모습을 조각한 베로키오의 다윗과 달리 미켈란젤로의 다윗은 싸움 직전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싸움에 나서기 직전의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갑옷과 무기들은 모두 가식이고, 팽팽한 긴장을 표현하기엔 거추장스러운 부속물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걷어내고 생생한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누드의 선택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킨 르네상스 정신의 화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자와 성녀의 조화 - 피에타


다비드 상을 조각하기에 앞서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유명한 걸작 "바티칸 피에타"를 제작(1498~1499)하게 된다. 성모를 젊은 여인으로 묘사하는 파격적인 표현과 그로 인한 우아함과 절제미, 균형을 모두 갖춘 "바티칸 피에타"는 단숨에 미켈란젤로를 거장 반열의 예술가로 올려놓는다.


Michelangelo's_Pieta_5450_cropncleaned_edit (1).jpg 바티칸 피에타

성모 마리아의 우아한 표정과 예수의 처절한 주검, 그냥 비단결 같은 옷주름의 생생함 과연 이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품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조각가로서의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여지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통상 피에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그려지는 성모의 표정은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미켈란젤로의 마리아는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표정이다. 구원의 실체를 이뤄낸 그 이후의 평안함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과연 실제 마리아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믿고 예수의 세상에 대한 구원의 사명을 믿는다면 오히려 구원을 완성한 이 순간 그의 어머니는 안도의 평안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교리적으로 미켈란젤로의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다루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잘 드러낸 유명한 구절이 있다.


“형상은 이미 돌 속에 있다. 나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할 뿐이다”

(The sculpture is already complete within the marble block, before I start my work. It is already there, I just have to chisel away the superfluous material)


이런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죽기 직전까지 죽기 직전까지 그의 삶을 붙잡았던 "론다니니 피에타"라는 작품이다. 돌 안에 이미 피에타의 형상이 있고, 그것을 제거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티칸 피에타와 달리 미완이어서 그런지 더 처절하고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Pietà_Rondanini.jpg 론다니니 피에타 (밀라노, By 미켈란제로)


바티칸 피에타를 완성 (1499)하고 이태리 일대의 최고의 스타가 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공화국의 주문을 받아 또 다른 성경 속의 인간적인 영웅 "다윗"의 조각상을 만들게 된다. (1501 ~ 1504)


조각과 회화의 만남 - 천지창조


조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미켈란젤로에게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1508~1512) 프로젝트가 맡겨지게 되고,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제작하게 된다.


The_Creation_of_Adam_perspective_fix.jpg 천지창조 - 시스틴 성당

본인의 대리석 조각을 회화로 옮겨놓은 듯 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생생한 근육을 가진 인간과 신의 표현으로 당시 중세 미술의 성화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피에타와 다비드상의 조각가답게 그는 그림도 조각처럼 표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회화의 조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미켈란젤로는 그가 가진 조각의 재능을 회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근육의 볼륨감과 입체감은 다빈치의 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림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미켈란젤로의 이런 조각적 재능이 회화로 표출되는 것을 "조각가의 붓"이라고도 부르곤 한다.


성당 천장 그림을 주문한 로마 교황청의 요청에 의해 미켈란젤로는 조각의 재능을 회화에서도 여지없이 꽃 피우게 된 것이다.


미켈란젤로 본인은 그림 주문을 고통스럽게 여기면서 힘든 작업을 하였지만, 그로 인해 르네상스 정신은 완성되게 되었던 것이다.


미켈란제로는 이로부터 25년 뒤 창조의 마지막 과정인 "최후의 심판"(1536~1541)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제를 다시 맡게 된다.


Last_Judgement_(Michelangelo).jpg 최후의 심판 (시스틴 성당 By 미켈란젤로)

이 작품 역시 대리석 조각 군상들을 회화로 만나는 것처럼 많은 인물들이 대리석상처럼 묘사되고 있다. 근육질의 인간 군상들의 괴로움과 처절함을 교회당의 벽화로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심판을 앞둔 인간의 불안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그의 작품은 신성로마제국의 군대에 짓밟힌 당시 로마 교황청의 불안함, 종교개혁의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교회의 불안함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빈치와의 필연적인 경쟁


이토록 세계 예술사의 큰 획을 그은 미켈란젤로도 그의 완벽에 대한 집착, 경쟁심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피렌체라는 르네상스의 무대에서 필연적으로 다빈치와의 경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503년 피렌체 시청의 대벽화 프로젝트에서, 다빈치는 〈앙기아리 전투〉를,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를 맡았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미완으로 남아, '거장의 맞대결’은 전설로만 남았다.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아냥대기도 했는데, 다빈치는 미켈란젤로를 “조각밖에 모르는 장인”이라 깎아내렸고, 미켈란젤로는 다빈치를 “끝내지도 못하는 화가”라 비꼬았다. 그들의 경쟁은 승패를 남기지 않았지만, 오히려 후대 예술가들에게 더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거장의 풍모와 수려한 외모, 사교성을 두루 갖춰 당시 유럽의 셀럽이었던 다빈치와 달리 미켈란젤로는 오직 작품과 사투하고 작품의 완성도에만 집착하는 외골수적인 면모로 인해 말년까지 쓸쓸히 후원자들과의 불편한 공존을 하면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독신으로 고독하게 살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피렌체의 자유정신을,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그리고 인간 자신의 불안과 열망을 대리석과 벽화에 새겼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의 성취가 아니라, 고독한 인간이 신과 자신에게 던진 사투의 흔적이다. 다빈치가 실험과 호기심의 화신이었다면, 미켈란젤로는 고통과 집착의 화신이었다. 두 사람의 대비 속에서 르네상스는 더욱 풍요로워졌고, 오늘날까지 예술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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