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
이제 피렌체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내셔널 갤러리의 명작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는 보유한 명작이 너무 많아 공부해야 할 거리도 많지만 짧은 여행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자 욕심내면 화를 부르는 법.. 그래서 우리의 여행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인 "빛"을 테마로 명작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이야기를 적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열기는 유럽 구석구석 파고들었고, 특히 거상들이 많았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또한 르네상스 화풍을 재해석하면서 북유럽 르네상스 화풍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그 중심엔 오늘 이야기할 얀 반 에이크 (1390 추정 ~ 1441 )의 걸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가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10년 전 런던 여행 때 내셔널갤러리의 가이드 투어 때 들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난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 (가로 60cm × 세로 82cm )인데 얼마나 정밀하던지, 특히 설명을 듣고 보면 구석구석까지 세밀한 묘사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시 그 기억을 살려내려 애써 보았지만 지금은 그 기억은 온데간데 없어져 다시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공부를 해야 했다.
지금껏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늘 그림의 소재는 권력과 신들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아르놀피니부부의 초상화"를 제목부터 그저 부부의 초상화다. 이제 흔한 소시민은 아니라 부유한 거상이긴 하지만 신권을 가진 성직자도 아니고, 왕권을 가진 권력자도 아닌 상인, 즉 부르주아가 그림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부부의 초상화는 혼인서약의 장면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혼인 서약엔 많은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숨겨진 장치들이 이 혼인 서약을 그저 인간사의 일상이 아닌 신 앞에서 혼인을 선언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요즘 그림에는 작가의 서명은 흔한 일이지만, 고대, 중세의 화가들은 그저 장인, 기술자에 불과했기에 그 이름을 새겨 넣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얀 반 에이크는 그림 속에 서명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거울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얀 반 에이크이다.
혼인 서약의 증인으로서 얀 반 에이크는 이 그림 속에 자신을 등장시키고 그냥 그림이 아닌 스토리를 담은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그런데 이 거울은 더욱 기묘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의 둘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중세의 성화가 아닌 개인 부부의 초상화이지만, 그 시대의 기독교의 보편성, 혼인 서약의 대상으로써 예수와 하나님이 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또 다른 증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갈 때 성스러운 곳이라 하여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성스러운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서약 역시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치러지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치맛자락 곁에 서있는 강아지는 어떠한가? 예로부터 충직과 충절을 상징한 강아지의 품성을 아내의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그림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서 보면 그림 그 자체가 가진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스토리를 담은 작품으로써의 완성도가 얼마나 충실한 작품인지 새삼 알 수 있다.
그리고 낮인데도 켜져 있는 촛불은 하나님의 임재, 즉 신성한 빛을 상징하거너 혹은 결혼 서약이 신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고도 해석된다.
그리고 이 신 앞에서 이뤄지는 혼인 서약의 서명은 바로 "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다, 1434"라는 글귀로 혼인 서약의 증인으로 작가 자신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자세히 살펴보고 15세기 북유럽의 르네상스의 명작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