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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갤러리 II 빛의 시인, 터너

인상주의의 서막을 연 화가

by 은퇴설계자

영국이 낳은 19세기의 위대한 화가 둘을 꼽자면 터너와 컨스터블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컨스터블은 프랑스의 밀레와 비교되는 고요한 전원의 풍경을 그린 목가적 풍경화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터너의 풍경화와 그림들은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빛에 대해서 남다른 해석과 표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빛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술적, 재료적 기반을 구축한 화가였다면, 터너는 빛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그림으로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고도 획기적인 시선을 제기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다.


터너의 수많은 명작 중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 하나를 꼽자면 바로 "비, 증기, 속도" 이 그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joseph-mallord-william-turner-rain-steam-and-speed-the-great-western-railway--1844-joseph-mallord-william-turner-1775-1851.jpg 터너, "비, 증기, 속도"


"비, 증기, 속도"와 함께 내셔널갤러리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두 화가를 같은 방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경험은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내셔널갤러리의 Room 34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는 컨스터블의 《건초마차》가, 맞은편에는 터너의 《비, 증기, 속도》가 걸려 있다. 한쪽은 고향의 강가를 건너는 수레와 농부들의 평화로운 풍경이고, 다른 한쪽은 폭우 속을 가르며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질주다. 두 그림은 단순한 풍경의 묘사를 넘어, 19세기 영국이 직면한 거대한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컨스터블_건초마차.jpg 컨스터블, "건초 마차"

컨스터블이 붙잡은 것은 사라져 가는 농촌의 기억이었다. 산업혁명이 도시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동안, 그는 여전히 서퍽의 하늘과 초원을 그렸다. 그의 붓질은 자연에 대한 애정을 넘어, 인간의 삶이 뿌리내린 터전을 기록하려는 고백처럼 다가온다. 《건초마차》는 그래서 고요하다. 전원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말과 사람, 강물과 구름은 모두 일상의 조화 속에 녹아 있다.


반면 터너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변화의 폭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비, 증기, 속도》 속의 기차는 더 이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리를 가르고, 강을 가로지르며, 비와 바람조차 뚫고 나아간다. 터너는 증기와 빗방울, 회색 안개를 빛의 흐름으로 풀어내어, 속도라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그림으로 구현한다. 보는 이에게 남는 것은 섬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달려드는 속도의 감각 그 자체다.


《비, 증기, 속도》의 구도는 기묘하다. 마치 오늘날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기차 추격신의 한 장면 같은 구도로 그려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구도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터너의 《비, 증기, 속도》를 보면 19세기 회화답지 않게 영화적이다. 기차는 대각선으로 관람자를 향해 달려오며, 마치 오늘날 영화의 추격신 한 장면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전통적 원근법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무너지고, 소실점은 안개와 비 속에 불분명하다. 대신 증기와 빛이 화면을 휘감으며 속도와 진동을 전달한다.

터너가 이런 구도를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실제 기차 여행을 즐겼고, 기관차의 굉음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 경험은 정지된 풍경 대신, 달리는 눈의 시각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눈부신 빛과 흐릿한 윤곽, 일렁이는 감각이 중요했다.


결국 터너는 회화에서 최초로 ‘모션 블러’를 구현한 셈이다. 《비, 증기, 속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대의 속도감을 시각화한 드라마이며, 오늘날 영화적 구도의 선구적 실험으로 읽힌다


컨스터블과 터너 두 화가는 19세기 영국 사회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하나는 자연과 전원의 목가, 또 하나는 문명의 질주와 빛의 소용돌이. 같은 풍경화라는 틀 안에서 컨스터블은 시간을 붙들었고, 터너는 시간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예술은 사라져 가는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세계를 예감하기 위한 것인가.


터너의 그림 앞에 서면 답은 분명하다. 그는 빛을 통해 미래를 보았다. 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변화와 속도의 상징이자 시대를 여는 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를 “빛의 시인”이라 부르며, 컨스터블과 함께 영국이 남긴 또 하나의 위대한 얼굴로 기억한다.


속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터너의 그림은 눈보라, 폭풍과 같은 풍경들이다.

터너_알프스산을_넘는_한니발의_군대.jpg 터너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터너는 알프스의 눈과 폭풍을 속도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한니발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실감 날 수 있도록 해준다.


터너는 빛을 단순히 자연을 비추는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빛이 만들어내는 흐름, 그 속도감과 긴장감을 그림 속에 심어 넣었다. 《비, 증기, 속도》가 산업혁명의 질주를 담아냈다면,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은 고대의 전쟁마저도 빛과 눈보라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해석해낸 장면이다. 눈보라가 화면을 휘몰아치고, 그 속에 묻힌 인간 군대는 오히려 왜소하고 무력하게 보인다. 터너에게 있어 속도란 단순한 빠르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 그리고 시대를 뒤흔드는 변화의 감각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단지 밝고 어두운 명암을 구분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자, 눈앞의 장면을 시간과 운동 속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터너의 하늘은 늘 움직였고, 그의 바다는 늘 출렁였다. 그림은 멈춰 있지만, 그 속의 빛은 쉬지 않고 흐르며 우리를 휘감는다.


그래서 터너는 후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모네가 루앙 대성당의 빛을 시시각각 다르게 포착할 수 있었던 것도, 터너가 이미 빛을 ‘형태를 지우는 힘’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터너의 화폭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빛과 속도의 체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19세기의 영국이 남긴 두 얼굴, 컨스터블과 터너. 하나는 고향의 들판을 영원히 지켜내려 했고, 다른 하나는 시대의 질주를 빛으로 예견했다. 그 갈림길에서 터너가 선택한 것은 두려움 없는 도전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폭풍 속에서, 증기와 비 속에서 그는 미래를 그렸다.


오늘 우리가 내셔널갤러리에서 그의 그림 앞에 설 때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전히 현재를 흔드는 힘,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터너는 지금도 여전히 “빛의 시인”, 그리고 “속도의 화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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