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기를 예술로 만든 남자의 이야기
이제 미술관 대장정의 마지막 장소인 테이트모던의 이야기다.
사실 테이트모던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현대 미술 최고의 미술관으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사실 뉴욕의 복잡한 거리 한가운데 있는 뉴욕의 MOMA와 비교해 봐도 템즈강의 끼고 맞은편으로는 세인트폴 성당 풍경이 보이는 테이트모던은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현대 미술 작품 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예술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곳에 많은 현대 미술의 거장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세 명을 골라서 사전 답사를 해보려 한다.
오늘은 그중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이야기이다.
사실 뒤샹의 "샘 (Fountain)" (1917) 은 미술을 어느 정도 공부한 이들에겐 꽤 유명한 작품이다.
아니. 소변기를 전시회에 옮겨두고선 그걸 작품이라고 한다고?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의문은 여전하다.
지금도 미술은 사실의 재현이라는 관습에 오랫동안 젖어 있다.
사실의 재현을 넘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화가들이 터너를 비롯하여, 모네 등 인상주의부터 싹트기 시작하였으나, 그들조차 어찌 보면 더 나은 사실의 재현을 위해 "사실"이 무엇인지, 빛의 변화를 어떻게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이라고 볼 때. 뒤샹의 "샘"은 도발적이다.
어떻게 소변기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뒤샹이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Ready Made) 소변기를 전시회 공간으로 옮기는 일이 다였을 것이다.
사실은 이 작품의 원동력은 물리적 힘에 있지 않다. 이게 작품이라는 "생각 그 자체"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주의 이후 입체파 등 그림을 해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다만, 그들은 여전히 회화라는 관습과 캔버스라는 물리적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뒤샹은 달랐다. 1913년엔 자전거 바퀴를 뒤집어 전시하고선 "자전거바퀴"라는 이름을 붙여 작품이라고 명명했다.
얼핏 보면 회전 관람차 같기도 하고, 이 자전거 바퀴가 어떻게 작품이 된 것일까?
뒤샹은 이걸 작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일화가 있다. 1912년 항공박람회를 다녀온 뒤샹은 항공기 프로펠러를 보고선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다면서 "회화는 망했다"라고 회화를 접게 된다.
뒤샹은 꽤 전도유망한 입체파의 작가였다. 그의 회화적 역량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 "게단을 내려오는 나부, No2"이다.
마치 영사기의 한 컷 한 컷 잘린 모습을 겹쳐서 표현한 그의 작품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속도를 담고자 했던 많은 화가들의 열망을 이렇게 화폭으로 옮겨낸 건 뒤샹이 처음이었다. 하나의 화폭에 여러 입체면을 담았던 피카소의 입체파는 여러 시간을 쪼개서 담아낸 뒤샹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회화에서도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뒤샹의 회화는 죽었다는 선언은 도발적이나, 현대 미술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이후 현대미술은 뒤샹의 성공적인 도발로 인해 사실을 재현하려는 미술 본연의 가치를 넘어 어떤 생각을 담아야 하는지, 그 생각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뭔지 자유로운 표현의 세상으로 내던져지게 된다.
어찌 보면 르네상스 이후 이상적인 사실의 재현에 찬사와 환호를 보냈던 단순한 세상에서 무엇이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의문 자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뒤샹은 오늘날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이트모던엔 뒤샹의 걸작, "샘"의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다.
복제본이라 문제 될 건 없다. 어쩌면 뒤샹은 복제본이 전시되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복제품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세상을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