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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미술관 III 르네상스가 낳은 두 천재-다빈치 편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 1편 다빈치 편

by 은퇴설계자

다빈치의 삶


2003년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은 세계를 강타한다. 루브르에 전시된 모나리자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고 기존 성경의 역사 해석을 뒤엎는 흥미로운 전개를 통해 "다빈치 코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낳은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의 삶이 어떠했기에 그의 작품과 삶은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남겨져 있는 것일까?


피렌체는 그의 청년 시절 수련공 수준의 작품이 남겨진 곳이다. 하지만, 피렌체는 그가 태어난 곳이다. 다빈치의 세계적인 명작 "최후의 만찬" (밀라노), "모나리자"(파리 루브르박물관)는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피렌체 여행에서 다빈치를 기억하고 떠올려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가 바로 피렌체가 대표하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대표할 수 있는 인류사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그림 중 가장 값나가는 그림을 꼽는다면 단연 "모나리자"를 1순위로 꼽을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1년에 1천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유치하는데 1등 공신이 바로 "모나리자"이다.


그렇다면 다빈치 삶과 작품들이 어떠했기에 아직까지 우리는 다빈치의 작품에 열광하는가?


바로 모나리자의 신비함을 파헤쳐 보자.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

모나리자.png 모나리자, 다빈치

이 그림에서 보다시피 모나리자는 15세기 그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오늘날 고급 카메라의 기능으로 구현 가능한 아웃포커싱 기법으로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고, 주제의 초점을 확실히 강조하는 기법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하여 경계선이 없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인물의 신비로움을 더욱더 드러내고 있다.


미소인 듯 아닌 듯,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헷갈리는 모나리자의 얼굴은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후대의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이런 해석의 여지가 다양함으로 인해 "다빈치코드"와 같은 음모론적 이야기의 소개가 되기도 한다.


다빈치의 비투르비우스적 인간관


아래 또 다른 유명한 작품. "비투르비우스적인 인간"을 보면 다빈치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빈치_인체해부도.png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다빈치

비트루비우스는 고대 로마의 건축가로 그의 저서 《건축십서(De Architectura)》에서 “건축의 비례는 인간의 신체 비례와 닮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의 몸이 곧 조화와 균형의 표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다빈치와 르네상스가 만나면서 서양 세계를 강타한다.


이 그림 속의 원은 무한한 하늘의 세계를 상징하고, 정사각형은 현실의 유한성을 가진 땅을 상징한다. 팔과 다리를 뻗으면 원의 둘레에 닿으며, 팔다리를 가지런히 하면 정사각형의 둘레에 닿은 하늘과 땅과 인체의 조화로움은 이 세상의 중심이 인간임 주장하며 인간 중심의 조화로운 세상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인체의 균형미와 원근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


오늘날 R&D 정신의 기원 - 최후의 만찬


이번 여행에서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루체른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열차는 밀라노역에서 갈아타기를 해야 한다.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한 시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상의 끝에 나중을 위해 "최후의 만찬"을 보지 않기로 했다.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서 다시 밀라노에 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피렌체라는 목적지를 앞에 두고 15분을 위해 밀라노에서의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것은 여행의 기대와 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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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은 20세기에는 감상이 쉽지 않았다.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복원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작품이 완성된 후부터 "최후의 만찬"은 계속된 보수 작업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는 프레스코화 (젖은 석회 위에 그리는 방식,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와 달리 마른 벽에 템페라와 오일 혼합재를 이용해서 작품을 제작한 덕분에 습기에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며 이는 사후 관리에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최후의만찬.jpg 최후의 만찬, 다빈치


이러한 다빈치의 실험 정신에 대해서 후대는 오늘날 R&D의 시초로 평가하고 있다. 기존의 관습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실험 정신은 지속적인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보수하는 과정에서의 불완전성 자체가 다빈치의 실험정신의 원천이자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피렌체의 다빈치의 흔적


우피치 미술관에는 20대의 다빈치가 남긴 "수태고지"라는 작품이 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29일 오전 08_33_53.png 다빈치 "수태고지"


중세 미술의 대표적인 소재인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성모 마리아에게 알려주는 "수태고지"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먼 훗날 다빈치의 작품에서 만나게 될 아웃포커스의 배경 처리 기법을 볼 수 있으며, 원근감 넘치는 인물 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천재의 싹은 20대부터 돋보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우피치가 보관하고 있는 "수태고지"라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바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 루브르가 간직하고 있는 "암굴의 성모"라는 작품이다.


두 가지 버전의 암굴의 성모


다빈치_암굴의성모_런던.jpg 암굴의 성모, 내셔널 갤러니, 다빈치


다빈치_암굴의성모_루브르.jpg 암굴의 성모, 루브르, 다빈치

같은 제목의 두 가지 작품이 있는데, 보다 후대에 완성된 내셔널갤러리 버전보다 루브르 버전이 배경 묘사와 인물 묘사에서 보다 완성도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는 루브르버전의 파격성에 있다.


루브르 버전의 "암굴의 성모"는 1483년 밀라노의 무적무염동정마리아 형제단(Confraternit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으로부터 제단화를 의뢰받아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의뢰자는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세례 요한, 천사, 천상의 분위기를 담을 것을 조건으로 걸었지만, 다빈치는 여기에 어두운 바위 동굴, 신비로운 빛, 미묘한 인물 배치를 넣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너무 파격적이었다는 점이다. 아기 예수와 아기 세례 요한이 나란히 등장하는데, 요한이 마치 더 강조된 듯 보인다는 점. 천사가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는 수수께끼 같은 제스처. 성모의 모습도 ‘성스러운 여왕’보다는 ‘자연 속 인간 어머니’처럼 표현되었다는 점 때문은 형제단과 갈등이 생기고, 약속된 대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형제단의 요청에 맞춰 정통성을 살린 작품으로 다시 재탄생한 작품이 내셔널 갤러리의 "암굴의 성모"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누구를 위한 그림인가? 에 대해 오늘날과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예술가를 후원하는 세력의 세계관과 인식의 영향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도 피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제약들을 벗어나 말년의 다빈치는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을 인정해 준 프랑스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 머물게 되고, 모나리자와 같은 명작이 파리의 루브르에 전시되게 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들 역시 그 시대의 관습과 고정관념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음을 다빈치의 삶을 보면서 새삼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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