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6년 가족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정과 동선 간 이동 계획, 그리고 미술사 탐방과 과학사 탐방을 준비하는 글을 엮을 브런치북 시리즈 중 하나의 글이다.
여행의 컨셉과 여행지를 이야기한 첫 번째 글은 아래 링크에서 참고하시면 된다
https://brunch.co.kr/@retire-planner/15
언제부터인지 해외 가족 여행을 가게 될 경우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잡게 되었다.
다 큰 아이들과 호텔에 머물기엔 숙박 비용도 많게 나올 뿐 아니라, 식비도 만만치 않다.
에어비앤비로 집 전체를 빌리게 되면 넉넉한 침실과 더불어 주방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엄청난 메리트다.
주방을 사용해서 아침, 저녁을 해 먹게 되면 1차적으로 식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휴식도 병행하게 된다.
사실 해외에서 식당 가서 주문을 하고 밥 먹는 간단한 일조차 식당 선택, 메뉴 선택부터 주문까지 해야 할 일이 꽤 많고,
실질적인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는 내게는 그것도 무척 부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할 경우 식사 준비는 가족 전체의 일이 된다. 주로 와이프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지만,
내가 준비해야 하는 외식보다는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현지 시스템에 젖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파리에서 에어비앤비 숙소에 머물 때 바로 가까이에 까르푸 매장이 있어 현지인들처럼 장을 보면서 식재료를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현지인들처럼 Paul에서 바게트 빵을 사고 까르푸에서 계란과 쌀을 사서 아침 식사를 해 먹는 일은 에어비앤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일 수 있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일 텐데, 그 나라 사람들한테는 당연한 거지만, 각 나라마다 열쇠 시스템, 도어 개폐 시스템이 정말 제각각이다.
최신의 아파트는 카드키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문은 넘버키패드를 쓰고, 집은 열쇠를 쓰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열쇠를 찾는 일이다.
어떤 곳은 우편함에 두는 경우도 있고, 창고 안에 넣어두는 경우, 계단 옆 화분 아래 넣어두는 경우 등등 케이스도 정말 다양하다.
이 순간이 원활히 동작하지 않을 때 식은땀이 줄줄 흐르면서 조마조마해지기 마련이다. 가족들은 아빠가 왜 이리 오래 걸리나 그저 기다릴 뿐이고, 열쇠를 찾은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런던에서 빅토리아역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하 창고 구석에 놓인 열쇠를 찾으러 가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잠깐 숙소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 누군가 낯선 이가 다가와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열쇠를 찾아 정문 앞에 나가서 그 사람에게 괜찮다고 돌려보냈는데, 느닷없이 다 큰 장정 서넛이 그 사람과 추격전을 하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안에 들어섰는데, 알고 보니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이는 여행객을 노리는 강도였고, 그를 덮친 사람들은 사복 경찰들이었다. 어찌 보면 치안이 잘 되어있다고 안심할 수 있지만, 역 앞의 숙소는 그다음부터 피하게 되었다.
숙소는 여행 기간 동안 쉴 수 있는 곳이면서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동의 거점이 되어서 편하게 도보든 대중교통이든 이동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숙소 가까이에 조용하고 근사한 카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의 질이 확 높아질 수 있다.
이번 여행도 그런 의미에서 여행지스러운 아침을 위해서 다소 가격이 있더라고 테이트모던 근처에서 숙소를 잡으려고 한다. 테이트모던의 카페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근사한 일이다.
루체른 근처에서는 정말로 휴식 그 자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물색하고 있다. 루체른에서 약간 떨어져 있더라고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숙소로 삼을 예정이다.
피렌체에서는 대안이 별로 없다. 이미 그곳은 도심 한복판에 숙소를 잡는 게 여행의 질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다. 두오모성당, 우피치 미술관, 갈릴레오 박물관 등 우리가 가야 할 곳들과 걸어서 10분 이내 갈 수 있는 숙소를 잡을 예정이다. 걸어서 10분 이내라면 그곳을 도심 한가운데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앞으로 남은 날의 여행 중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가족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여행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보다 더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여행은 좋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구해서 우리의 경험과 믿음을 쌓을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