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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II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다

운동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든 뉴턴의 이야기

by 은퇴설계자

운동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뉴턴은 운동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운동이란 변화다.

그 변화의 법칙을 수학으로 표현한 것이 갈릴레오가 이루지 못한 뉴턴의 성과였다.


그는 변화를 계산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묻는다.
AI가 미래를 예측하고, 인간이 그 계산을 따라가는 시대에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적분의 탄생은 이제, 계산이 인간의 언어였던 마지막 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움직이는 세계를 표현하는 수학, 미적분


고대의 수학은 멈춘 세계의 언어였다.
피타고라스의 도형은 완전한 형태를, 유클리드의 증명은 변하지 않는 질서를 다뤘다.

그들의 수학 속에서 세상은 언제나 정지해 있었다.
하지만 뉴턴이 살던 시대의 세계는 움직이고 있었다.

행성은 타원 궤도를 돌고, 사과는 떨어지고,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흔들렸다.
세상은 더 이상 ‘정적’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변화가 일상이 되었고,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변화였다.
움직이는 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매 순간을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순간은 지나가는 것이다.
정지된 수학으로는 이 ‘흐름의 세계’를 계산할 수 없었다.

뉴턴은 바로 그 불가능한 문제 앞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세상을 멈추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수학 — 미적분이었다.


그는 변화를 잘게 쪼개고, 그 조각들 사이에서 질서를 찾았다.
움직임 속의 규칙, 연속 속의 법칙.
뉴턴의 미적분은 세상을 그리기 위한 새로운 펜이자,
시간을 계산하는 인간의 첫 언어였다.


미분,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다


뉴턴이 만든 새로운 언어의 핵심은 ‘순간’을 붙잡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시간 위에서 일어나지만,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 점을 포착하려 했다.
움직임이 멈추는 찰나, 변화를 0으로 압축했을 때 남는 흔적 — 그 미세한 흔적이 바로 미분이었다.


뉴턴은 물체의 속도를 ‘한순간의 거리 변화’로 정의했다.
시간이 무한히 작아질수록, 거리의 변화는 점점 작아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미세한 비율, 즉 변화량이 남긴 기울기를 계산하는 순간,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된 점 안에서 시간의 흐름이 보였고, 한 점의 기울기에서 운동의 법칙이 태어났다.

‘0으로 나눈다’는 불가능을 그는 수학으로 돌파했다.
무한히 작은 양, 무한소(infinitesimal)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변화와 정지를 동시에 품는 세계를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무한소의 사유는 단순한 계산의 기법이 아니라,
세계의 본질이 연속적이라는 믿음에 대한 수학적 선언이었다.


미분은 결국 변화의 언어화였다.

그는 정지된 도형의 세상에서 벗어나, 움직임 자체를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었다.
기울기는 속도가 되고, 속도는 시간의 문장이 되었다.
뉴턴은 ‘변화’를 숫자로 쓰는 법을 배운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가 만든 이 언어는 이후 물리학의 심장이 되었다.
행성의 궤도, 빛의 굴절, 사과의 낙하 —

모든 운동은 이제 하나의 미분 방정식으로 다시 쓰일 수 있었다.

그는 정지된 점에서 속도를 보았고,
한 점 안에서 시간을 발견했다.
그 한 줄의 수식 속에서, 우주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분, 전체를 연결하다


미분이 순간의 변화를 포착하는 언어였다면,
적분은 그 수많은 순간들을 다시 하나로 엮는 언어였다.

뉴턴은 세상을 더 잘게 쪼개는 대신, 이제 그 조각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사과가 떨어질 때의 속도를 넘어, 그 속도가 만들어내는 전체의 거리,
순간의 힘이 쌓여 만들어내는 궤적을 계산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단순했다.
변화를 무한히 작은 조각으로 나눈 다음,
그 조각들을 모두 더하는 것이다.
하나의 변화는 작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거대한 곡선이 되고, 하나의 운동이 된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7일 오후 05_52_40.png 적분

이 ‘무한히 작은 것들의 합’—그것이 바로 적분이었다.

미분이 시간을 잘라 한 점의 속도를 드러냈다면,
적분은 시간을 껴안아 전체의 이야기를 복원했다.

속도의 연속이 거리가 되고, 힘의 축적이 에너지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
변화와 누적, 순간과 전체를 연결하는 철학적 사유였다.


뉴턴은 이 관계를 통해 미적분의 근본 정리를 세웠다.
“미분과 적분은 서로의 거울이다.”
한쪽이 변화를 말한다면, 다른 한쪽은 그 변화의 흔적을 모아 세계를 완성한다.

그는 시간의 점과 시간의 강을 동시에 본 사람,
순간과 연속을 하나의 수식으로 묶은 최초의 시인이었다.

적분은 결국 세계를 다시 잇는 기술이었다.

변화와 질서에 담긴 우주의 연속성


흩어진 변화들을 모아 흐름으로 만들고,
단편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질서로 엮는 일.
뉴턴이 미적분으로 만든 것은 단순한 계산법이 아니라,
우주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방식이었다.
그 수식 위에서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처음으로 ‘전체로서의 운동’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뉴턴은 세상의 변화를 수식으로 썼다.
그에게 계산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언어였다.

오늘 우리는 데이터를 계산하지만, 그 계산 속에서 ‘이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AI가 세상의 흐름을 예측하고, 인간은 그 결과를 소비한다.

그러나 뉴턴이 보여준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유였다.
그는 변화의 원리를 묻는 인간의 의심을 수식으로 남겼다.
그래서 지금 뉴턴을 다시 읽는 일은,
계산이 아닌 사유로 세계를 다시 번역하려는 시도다 —
데이터의 시대에 다시 인간의 문장을 되찾는 일이다.


그는 질량으로 세상의 저항에 질량이란 이름을 붙였고,
미적분으로 세상의 변화를 문장으로 썼다.
그가 남긴 방정식은 우주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를 다시 번역한 자가 바로, 시간의 과학자 — 아인슈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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