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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어린이 vs 어른이

수직과 수평의 한 끗 차이

by 은퇴설계자

어린이와 어른. 문득 두 단어의 뿌리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정신을 뜻하는 '얼'이 두 단어 속에 공통적으로 스며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두 단어를 가르는 결정적인 열쇠는 모음 'ㅣ'와 'ㅡ'의 한 끗 차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원적으로 접근하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어린 백성'에서 알 수 있듯, 옛말에서 '어리다'는 '어리석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민한 아이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칭하기엔 어폐가 있다. 아이가 어른의 거울이라면, 아이가 어리석을 때 어른 또한 매한가지일 테니까.


반면 '어른'은 '남녀가 어우러지다'라는 뜻의 '어우르다'에서 왔다고 한다. 성장하여 짝을 만나고 가정을 이루며 서로 섞여 사는 모습이니, 이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어원이나 학술적인 의미를 잠시 내려두고 글자의 '모양' 그 자체에 집중해 보고 싶다. 과연 'ㅣ'와 'ㅡ'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


나는 'ㅣ'에서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올라가는 아이의 생명력을 본다. 수직으로 솟구치는 성장의 에너지, 그것이 바로 어린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ㅡ'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아이들이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위협하고, 급격한 노령화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제 밥그릇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이라지만, 그렇기에 어른의 역할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른됨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어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수직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이 거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수평의 눈높이에서 묵묵히 등을 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는 일이다.


비록 획 하나 눕혔을 뿐인 차이라 해도,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먼저 모진 세월을 견뎌낸 선배로서 희망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글자'가 알려주는 진정한 어른의 의무가 아닐까.


ChatGPT Image 2025년 12월 11일 오전 11_22_15.png Image By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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