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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오브제의 독백: 러닝화

우리는 땅을 밀어내며 나아간다

by 은퇴설계자

나는 현관의 가장 바깥쪽, 문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산다.

구둣주걱이 필요한 뻣뻣한 구두들과는 다르다.

나는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너의 가장 가벼운 엔진이다.


네가 나를 꺼내 신발 끈을 꽉 묶는 순간, 나는 그 압박감이 좋다.

그건 나를 조이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해 볼까?”
하는 너의 하이파이브 같은 거니까.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공기, 딱딱한 아스팔트, 혹은 부드러운 흙길. 어디든 상관없다. 네가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바닥을 힘껏 밀어낸다. 중력은 우리를 끌어내리려 하지만, 나는 내 쿠션을 이용해 너를 다시 공중으로 띄워 올린다.


‘쿵, 쿵, 쿵.’


이건 소음이 아니다. 너의 심장과 내 밑창이 함께 만드는 리듬이다.


나는 안다. 네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다리가 무거워질 때, 사실은 멈추고 싶어 한다는 걸. 그럴 때마다 나는 네 발을 더 단단히 감싼다.


“한 발자국만 더. 거기까지만 가보자.”

나는 너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네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하는 파트너다.


다녀오면 내 몸엔 흙먼지가 묻고, 밑창은 조금 닳아 있다. 예전의 구두나 샌들 친구들은 “어머, 험하게 다뤄졌네”라고 걱정하지만,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나의 상처는 너의 성취다.


밑창이 닳은 만큼, 너의 근육은 단단해졌고 흙이 묻은 만큼, 너의 스트레스는 떨어져 나갔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끈을 풀 때, 네 발에서 나는 열기, 그리고 기분 좋은 땀 냄새. 그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냈다는 증거다.


너는 나를 툭 벗어두고 “아, 개운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신발장으로 돌아가며 생각한다.


너를 개운하게 만들 수 있어서, 너를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서 참 다행이라고.


나는 러닝화다. 나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너를 뛰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내일도, 나를 신고 세상 차갑게 굳은 바닥을 힘차게 걷어차 주길.


우리는 멈춰 있을 때보다, 달릴 때 가장 우리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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