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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미세먼지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

미세먼지 덕분에 눈길이 녹다

by 은퇴설계자

따뜻한 겨울날, 피할 수 없는 고역은 역시 미세먼지와의 싸움이다. 혹독한 추위를 밀어내고 찾아온 온기는 반갑지만, 늘 뿌연 먼지를 동반한다는 게 문제다.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 먼지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차가운 북풍 대신 따뜻한 서풍이 불 때마다 시야가 흐려지니, 범인은 당연히 서쪽에 자리 잡은 그곳일 테다.


문득 코로나 시절의 그 낯설었던 청정함이 떠오른다. 격리의 공포는 끔찍했지만, 중국의 공장들이 멈추자 한반도의 겨울과 봄은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을 되찾지 않았던가.


하지만 세상만사,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함께 오는 법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싫어하던 미세먼지 덕분에 걱정을 하나 덜었다.


매주 화요일 새벽이면 남산에 오른다. 겨울 산행의 최대 적은 응달에 얼어붙은 눈길이다. 엊그제 내린 폭설로 곳곳에 눈이 쌓였을까 봐 이번 주 산행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세먼지를 몰고 온 이 봄날 같은 따뜻함이 산책로의 눈을 말끔히 녹였을 것이다.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 아래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를 발견한다.

이젠 미세먼지마저 고맙게 여기다니, 나도 점점 세상 사는 맛을 알아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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