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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탕 Oct 28. 2020

나도 이제 곱슬머리로 살래

온갖 면박을 받아온 불쌍한 내 머리

런던에 오자마자 느낀 것은, 이 곳 사람들은 피부색도 다양하지만, 머리에도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중에서는 미용실에서 만들어진 머리도 있겠지만, 태생부터 빨간 머리, 금발머리, 갈색머리 등등 색색의 머리들을 비롯하여,

생머리와 아주 곱슬곱슬한 머리, 구불구불한 웨이브 머리 등 형태도 다양하다.


나는 아빠로부터 곱슬머리를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곱슬머리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매직 스트레이트 펌이라는 문물을 만나 적어도 20년은 매직 파마를 해왔었다.


어릴 때 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곱슬머리


그러다 보니 머리에 뿌린 돈만 적어도 수백은 된다.

(돈만 드는 것도 아니고, 미용실에서 적어도 반나절은 보내야만 머리가 완성이 된다)


것뿐이랴, 매번 거금을 들여 미용실을 가는 것인데,

나는 미용실에만 들어가면 죄인이다. 


- 매직하려고 하는데요

라고 말하는 순간 한숨을 푹푹 쉰다, 그러고는 선심 쓰는 척 

-원래 고객님 같은 악성 곱슬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영양제도 많이 들어가야 돼서 20만 원이지만 학생이신 것 같으니 15만 원만 받을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미용사들의 수고는 이해하는 바이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는 고객을 면박 주는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내가 곱슬머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태생부터 곱슬머리인데!! 어쩌라고!!)

적어도 내가 10대 때부터 주구장창 미용실을 다녀본 결과 그렇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매직을 하고, 런던으로 와서 3개월쯤 지났을 때,

나의 머리들은 서서히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런던의 미용실엔 매직이라는 시술이 아예 없기 때문에, 한인 미용실을 찾아갔었다.

무뚝뚝한 부산 남자 미용사가 내 머리를 보더니, 다른 미용사를 불러와서


-풋ㅋㅋ 야 XX랑 머리가 진짜 정말 똑같다

-ㅋㅋㅋ 진짜네~ 


XX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말이 아닌 건 확실했다. 

어렸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기분전환 겸 이뻐지려 머리를 하러 온 것인데, 기분이 팍 상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기 싫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4시간 후 미용실을 나설 때는 쫙쫙 펴진 머리가 된 채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또 3개월이 흐르고, 내 머리가 다시 서서히 구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런던의 온갖 곱슬머리들을 보며,

"왜 저렇게 부스스해"가 아니라, "진짜 멋있다"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내 자연 곱슬을 피러 미용실로 달려가는 짓은 그만 하려고 한다.



나의 긴 생머리 안녕

내 곱슬머리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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