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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Hay Apr 14. 2022

무지개를 보는 아이

호주 히치하이킹의 시작

중국에서 육로와 해로를 따라 내려오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호주로 넘어올 생각을 했던 건 항공료가 저렴했던 게 큰 이유였다. 한화로 10만 원 조금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발리 덴파사 공항에서 서호주 퍼스로 왔을 때 소독한다고 무슨 시험관 같은 곳에 나를 넣고 하얀 가스를 살포하는가 하면-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방불케 했다-, 내가 3개월 동안 호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 결국 은행계좌 잔고를 보여주는 수모까지 겪고 나니 괜히 왔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세관에서 한 시간 남짓 잡혀있다 공항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의 최초 방문 시에 여행객에게 입국절차의 까다로운 인상을 심어주는 하나의 절차였다. 불법 체류자 예방차원이기도 한가보다―2회째부터는 체크도 잘 안 한다.

팜에서 가까운 마을(덴마크)의 공원.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미리 연락한 팜 호스트가 픽업하기로 한 버슬톤(Busselton)으로 향했다. 창으로 보이는 호주의 첫인상은 정갈했고, 빡빡하지 않게 채워진 여백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영국인 호스트인 존이 이모저모 알려주고 챙겨줘서 별 어려움 없이 호주의 팜 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존은 버슬톤에서 목적지까지 오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해주었고, 호주의 선불 유심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도착한 곳은 밤 농장이었는데, 밤을 판매도 하지만, 밤 사료를 먹인 돼지를 프리미엄 붙여 판매하는 팜이었다. 존은 퍼머컬쳐(Permaculture)*를 소개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디자인도 해 주는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팜에는 먼저 온 스페인 자원봉사자 커플이 있었고, 이틀 후쯤 또 다른 호스트인 린다(Linda)의 딸과 손녀가 합류했다.

밤비탈 농장(Chestnut brae farm)에 뜬 은하수.

내겐 숙소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둘 다 카라반이었고 하나는 헛간(Shed) 안, 또 하나는 헛간 밖에 있었다. 나는 밖에 있는 카라반에 머물기로 했다. 겨울이라 추웠지만 별 사진을 찍기 쉬울 것 같아서였다.

일은 즐거웠다. 단순한 농업이라기보다 작물을 기르는 데에 생명의 의미를 부여해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느낌이랄까? 모든 생명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의 설명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존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영국의 문화 중엔 차 마시는 게 있었는데 점심 식전에 한번, 식후에 한번 있는 티타임은 의외로 배부르다. 그다지 간소하지 않다. 우리의 새참이랑 비슷한 건가 보다.


린다는 설탕에 알러지가 있어 주방에서 음식 하는데 많이 관여했다. 간혹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묘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알고 보니 이 호주란 나라는 물이 귀해서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는 게 일상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어딜 가나 설거지를 하는 방식에 대해 먼저 물어보는 버릇이 들었는데, 그걸 좋아하는 호스트들이 많았다.


린다의 딸인 라라는 이제 막 네 살이 된 오로라의 동생을 뱃속에 품고 있는 상태였다.

오로라는 동양인인 나에게 처음부터 호기심을 보였다. 눈을 반짝이며 쭈뼛쭈뼛 다가와 조금씩 거리를 좁히더니 이내 “캐치 미!”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캐치 미?’

‘나 잡아봐라?’

정말?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이 전지현 하이힐 신고 쫓아가는 그거? 영화에서나 나오는 걸 내가 호주에서 하게 될 줄 몰랐다. 처음에 난 린다와 존에게 어찌해야 되는지 구조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회피했으며 난 곧 오로라의 ‘나 잡아봐라’에 노예가 되었다.

저녁식사 이후의 시간은 늘 그 아이와 함께 집안을 조심스럽게(?) 뛰어다녔다.

거실과 주방.

눈만 뜨면 나를 찾는 오로라를 분석해봤다.

첫 번째 이유는 부르기 쉬운 내 이름이 아닐까 싶다. 당시 난 성의 이니셜을 따서 ‘제이’로 영문 이름을 지었다.

게다가 스페인 자원봉사자는 커플이고 둘이 늘 함께이다 보니 끼어들 틈새가 없었다. 나는 혼자고 이름이 부르기 쉽다. 제이.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오로라, 난 너의 엄마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야. 난 너의 친구야.”

나의 모토 중 하나가 남을 가르치지 않는 거다.

오로라에게 안 된다는 말(‘No’ 또는 ‘Stop’)보다는 그냥 그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 듣고 싶었다.

오로라는 이 말이 좋았나 보다. 또래에 비해 정신연령이 높은 오로라가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들에 나오면 항상,

“제이 어딨어요? 내 친구 어딨어요?” 하며 나를 찾던 또 다른 이유였다.

80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조그만 친구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 늘 온 힘을 다해 지켜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더욱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한 조각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와 폭 안기는 사랑스러운 친구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나를 봐주는 게 좋았다.


한 번은 자주 무지개를 발견하고 알려주는 오로라가 신기해서 물어봤다.

"How do you find a rainbow so well?"

“무지개는 항상 비가 온 후에 뜨니까!”

그래서 레인보우인가 싶었다. 레인(rain)+보우(bow).

난 이 말이 참 좋았다. 이 어린아이가 고진감래의 철학을 알리는 없었겠지만.

이곳 서호주 남쪽 지역의 겨울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비가 오고, 개인 후 볕이 들기를 반복한다. 수시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다른 말로 레인보우 코스트(Rainbow Coast)라고도 부른다.


태국에서부터 내가 지나온 팜을 거쳐서 온 폴란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태국, 말레이시아, 발리를 거쳐 서호주의 이곳까지. 동선이 겹친 것치곤 너무 공교롭지만, 어쨌든 그녀가 호주까지 넘어오면 같이 히치하이킹하자고 약속했기에 곧 다음 행선지를 향한 여정을 준비했다.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

헤어질 때 오로라가 했던 말에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다.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긴 했지만, 14개월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를 오가면서 다시 오로라를 볼 순 없었다.

생각해보면 오로라는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이였던 것 같다. 얼마 후, 오로라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동생을 돌보는 일에 심취해 있다고 하던데,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그림이 그려져 뭔가 흡족해 자꾸만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티브이 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시키는 오로라, 그 아이의 순수를 영원히 기억한다.

“캐치 미!”

소리치며 달리기 시작하는 오로라의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야생 이뮤(타조과의 새).
같이 생활하던 스페인 자원봉사자 커플.
이후 날라보 평원(서호주 퍼스와 남호주 아들레이드를 잇는 긴 도로)을 같이 히치하이킹한 폴란드 친구.
오로라때문에 비가 오고 개이는 날이면 예외없이 무지개를 찾기 시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퍼머컬쳐(Permaculture)는 번영하는 자연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배열을 채택하는 토지 관리 및 정착 설계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여기에는 전체 시스템 사고를 사용하여 파생된 일련의 디자인 원칙이 포함된다-위키백과(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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