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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Hay Oct 15. 2022

타즈마니아 에코빌리지

자연에서 미래를 구하는 사람들

타즈마니아에서 몇 번의 팜 스테이를 하던 중 한국 사람이 있었다는 팜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나처럼 자원봉사를 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다른 한국 사람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커플인 호스트(아셉과 리아나)는 내가 오자마자 전에 머물고 간 한국인 자원 봉사자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들에게도 동양인, 특히 한국 사람은 드문 케이스임이 분명했다. 어린 딸과 함께 온 엄마였다. 아이와 함께 이 먼 타즈마니아에서 자원봉사 여행을 한다니 뭔가 좀 멋져 보였다.


나를 픽업하는 차 안에서 포밋어블 베지터블(Formidable Vegetable)*이란 호주 얼터너티브 락밴드의 '김치'라는 노래를 틀자 주인집의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그 한국 자원봉사자 분이 김치를 담가줬다고 내게도 기대치가 생긴 모양이었다. 난 이들에게 양배추 김치를 담가줬다.


타즈마니아에서 제일 큰 크레이들 산 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소위 에코빌리지(Ecovillage)*라고 불리는 커뮤니티가 형성돼있었고, 어느 한 가구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여기저기 도와주면서 일을 함께 하는 품앗이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다. 난 주 20시간을 채워야 숙식을 제공받는 자원봉사였지만 굳이 한 가정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고 리아나가 말해주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다른 일을 하는 재미도 있었고, 마을 사람을 두루두루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웃의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를 제외하고 이 가정에서는 겨울을 준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주로 나무를 하는 일이 많았다. 호주의 다른 지역보다 추운 타즈마니아에서 도시 전기 없이 나무와 솔라 패널(Solar Panel: 태양전지판)만으로 난방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장작을 패고 그걸 쌓는 일은 의외로 좋은 운동이고, 메디테이션(Meditation: 명상법)이다.


커뮤니티 내 주민들 간에 교류도 활발했다. 주 1회 장터가 열려 서로의 생산품 또는 창작품(소품이나 액세서리류)을 전시, 판매했다. 같은 날 문화교류(친목다짐)의 차원에서 모여 장기자랑 비슷한 걸 하는데 어른들도 참여했지만 대부분 아이들 위주라 무슨 학예회처럼 아기자기했다.


주말에는 커뮤니티 만찬(Community Meal)이란 것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가구 단위로 음식을 준비해와, 모여서 같이 먹는 것이다. 한 번은 내가 김밥 두 접시를 준비했는데 순식간에 동이 났다. 다른 호주지역에서도 그랬듯이 여기도 김밥을 스시라고 부르며 정말 좋아한다. 간단하게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finger food)’로 스탠딩 파티에서 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한국의 자랑거리다.


전직이 사회복지사업 분야(저개발국가의 지역개발사업 포함)라서 그런지 어디를 갈 때마다 그곳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 뭔지가 늘 궁금했었다. 쉽게 말하면 ‘여기서 뭘 팔아먹을 수 있을까?’인데 돌아다니면서 접한 사람들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한 건 이때쯤인 것 같다.


흔히들 얘기하는 ‘지속 가능한 생활(Sustainable Living)’의 형태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보는 그들은 그랬다. 자본주의에서 돈이라는 통화(교환수단 또는 전표)를 아주 안 쓸 수는 없겠지만, 자급자족을 우선시하며 돈은 최소한도로, 소위 ‘적게 벌고 적게 쓴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 게이지가 채워지기 위해서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단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나도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았다.


전부터 찾아온 내가 그리던(또는 만들어보고 싶은) 이상적인 커뮤니티였다. 이 여정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해서 오히려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 떠돌고 그냥 여기서 정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굳이 척박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저개발 지역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반겨주고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지는 곳이라면 그냥 머물러 살아도 괜찮겠다고.

마침 뉴욕에서 온 자원 봉사자 커플 중 남자가 심리치료사였는데, 며칠 동안 무기력하게 멍하니 있는 나에게 심리상담을 해주었고, 내가 다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물어봤고, 나는 대답했다.

뉴욕 커플 중 여자는 음악을 하던 친구였는데, 자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줘서 머무는 내내 귀가 즐거웠다. 그림 같은 크레이들 산을 배경에 두고 두 사람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꼭 에덴의 아담과 이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이 보드게임을 할 때, 경쟁이 아닌 협업(또는 말살이 아닌 상생)을 가르치던 리아나도 늘 생각이 날 것이다.

내가 찾는 이상향에 부합하는 많은 요소들로 한때 방향성을 잃기도 했었지만, 다른 이유들이 있다는 걸 되새기며 여행하는 동기를 되찾게 해 준 곳이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순수함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뉴질랜드가 아니라 이곳 타즈마니아에서 찾은 듯했다.

주 1회 커뮤니티 게더링(gathering: 모임)을 가지고 아이들은 장기자랑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보는 듯 했다.
간혹 이웃에 품앗이를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여러종류의 일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바닥 타일작업을 하는 동안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와 창에 부딪혀 정신을 못 차리다가 간신히 깨어 자연으로 되돌려 보냈다.
다른 팜에서 감자수확시즌으로 일손이 딸린다 해서 며칠 도와주었다.
캠핑을 하면서 맞은 해질무렵의 스트론해변.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에서의 북두칠성만큼 쉽게 은하수를 관측할 수 있는데 어두울 수록 다채로운 색깔을 볼 수 있다.

*포밋어블 베지터블(Formidable Vegetable)

Grow Do It | Formidable Vegetable


*에코 빌리지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목표를 가진 전통적 또는 의도적 커뮤니티이다. 에코 빌리지는 의도적인 물리적 디자인과 주민 행동 선택을 통해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위키백과(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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