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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Hay Oct 17. 2022

프렌치 버스커

뉴질랜드 히치하이킹

사람들의 심리가 그렇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호주까지 왔으면 뉴질랜드까지 가고 싶어 진다. 호주의 항공편 또한 국제항공운임보다 국내 항공운임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멜버른에서 뉴질랜드의 수도인 오클랜드까지 당시 한화로 15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나라든 첫 입국심사는 늘 까다로웠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서 입국심사 시에 한국인 통역관을 데려올 때부터 '아, 이 사람들 또 시작이구나(호주 처음 입국 시 엄청 까탈스럽게 굴었다.)' 했다. 마치 '비자 만료되기 전에 반드시 떠나야 된다', '불법 체류하다 걸리면 큰일 난다'라는 것 마냥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고 해서 아예 마음을 느긋하게 가졌다. 결국, 한 시간 좀 덜 걸려서 공항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뉴질랜드의 3개월이 시작된 것이다. 북섬에서는 1개월, 좀 더 자연적이라는 남섬에서 2개월을 보낼 계획이었다.


오클랜드 시의 첫인상은 도시와 전원마을을 섞어놓은 느낌? 목가적 분위기도 조금 났다.

호주에서 넘어와서 그런지 뭐든 자꾸 비교가 되는데, 물가는 호주보다 조금 싸고 사람은 도시적인 호주인에 비해 유쾌한 느낌이 든다.


오클랜드의 한 호스텔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날 아침 미리 정해놓은 자원봉사지인 타이파(Taipa)행 버스를 탔다. 그 과정에서 서두르다가 랩톱과 카메라를 분실했다. 어디를 갈 때, 빡빡하게 시간에 맞춰 서두르지 않는 이유가 이런 실수를 겪고 난 이후 생긴 버릇인 것 같다. 이동수단(비행기, 열차, 버스, 택시 등)에서 하차할 때엔 늘 앉은자리 돌아보는 것도.     


뉴질랜드 넘어와 두 번째 자원봉사하던 팜에서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가 있었다. 프렌치 버스커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드리안이란 이 친구는 자기도 히치하이킹한다고, 며칠 같이 다니면 어떻겠냐고 해서 고민이 됐다. 호주에서 한 폴란드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하도 마음고생을 해서 두 번 다시는 여행 친구(travel mate) 안 만들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뉴질랜드 넘어오자마자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런 제안은 아무에게나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한테 하는 것도 아니고 쉽게 얘기 꺼낸 것도 아니다.”

고민 끝에 응했고, 여정은 즐거웠다.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나 할까?


그를 보면 꼭 유럽인 거죽을 뒤집어쓴 일본인 같았다. 뉴질랜드 오기 전에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로 2년 동안 일했다던데 그 영향일까? 동양의 미덕인 양보가 몸에 배어있다. 소위 '쓰미마센' 문화이다.

"Japanese normally don’t say ‘yes’ before they say ‘no’ 3 times―일본인은 보통 세 번을 사양한 후에야 수락한다."

그가 말했지만, 그도 그랬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호주로 넘어오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말 안 하고 담아두는 건 오히려 그것이 무례한 것이다'라는 걸 문화적 차이로 인지하고, 그에 맞춰 바뀌어온 나와는 반대인 셈이다.

여행하면서 영감을 얻어 작곡도 하고, 라이브 펍에서 즉흥연주도 곧잘 하는, 이해심 많은, 나에겐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다.


거리공연을 해서 그런지 동전 주머니를 하나 가지고 다녔는데 물건을 살 때마다 몇 달러씩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동전주머니가 마냥 신기해 보였다.

아드리안과의 3박 4일간은 무척 즐거웠다. 우린 번갈아 가면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히치하이킹을 성사시킨 사람은 뒷좌석에서 휴식을, 다른 사람은 앞 좌석에서 운전자의 입담을 끌어내는 도우미의 역할을 맡았다. 아드리안은 차 안에서 줄곧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우린 북쪽 끝인 케이프 링가(Cape Reinga)를 찍고 서쪽 해안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캠핑을 하는 며칠 동안 오전에는 비가 오고, 오후엔 한국의 가을을 연상케 하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 비가 올 때는 '뉴질랜드의 저주(curse of New Zealand)'라 불리는 '샌드 플라이(sand fly)'가 찾아왔다. 한국에서 비슷한 종류로 '쇠파리'라고 있는데 침을 꽂으면 가려운 게 아니라 아팠다. 뉴질랜드 사람이 말하기로는 해충이 없다는 뉴질랜드의 유일한 해충인 셈이다.

노숙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펼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4일째 되는 날에는 아르헨티나 여행자인 '이카(이카벨라)'가 우리를 픽업했다. 1주일의 휴가를 받아 차를 렌트해서 북섬을 도는 중이라고 했다. 겁도 없이 남자 두 사람을 태운 이카는 자신이 찜해놓았던 여행지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여행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북섬 동부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아드리안은 갈림길에서 내렸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나는 오클랜드까지 이카와 함께 동행했다. 이카는 그 다음날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북섬에서 시간을 더 보낸 아드리안과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뉴질랜드에서도 몇 번인가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와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이후 한국에 와서 아드리안에게 그를 소재로 글을 써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느라 연락을 취했고, 세르비아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던 그는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만나보라고 해서 그의 친구들을 만나 근황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음반 작업과 일 때문에 3년 동안 세르비아에 체류했고, 작업이 끝나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People with tie meet again.


사실 아드리안을 만나 가게 된 북쪽끝자락인 케이프 링가(Cape Reinga)는 그를 만나기 전에 먼저 한번 들렀던 곳이다.
두 번째 자원봉사 팜스테이.
이것저것 주워 모은 걸로 만들어 본 메모꽂이는 기념품으로 팜에 두고 왔다.
뉴질랜드 공동묘지의 특징은 공원처럼 꾸며놓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남섬의 한 캠핑장은 심지어 공동묘지를 옆에 끼고 있다.
두 번째 방문한 케이프 링가.
사막을 방불케 하는 샌드듄(Sand Dune).
호주에서도 그렇지만 뉴질랜드에서의 세컨드핸드샵(2ndhand shop)은 문화로 자리잡았는데, 쓰레기를 최소화시킨다는 자연에 대한 배려심이 깔려있는 듯 했다.
남자 둘을 픽업한 겁 없는 아르헨티나 여행자 이카가 데려간 호수.
오클랜드 시내와 북쪽의 한 타운. 한산함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첫번째 자원봉사 팜스테이.
머물던 숙소. 뉴질랜드에는 버스나 카라반을 두고 숙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캠핑이나 차박이 일상화되다보니 중고시장에 싸게 내놓거나 버려지는 차량도 많다고 했다.
분유를 먹고 난 송아지의 입가에 묻은 분유를 핥는 모습.
여러 쓰임새(약용, 미용)로 쓰이는 마누카나무의 꽃. 마누카꿀은 뉴질랜드의 특산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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