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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Hay Oct 17. 2022

래빗 헌팅

배회하는 프리소울

뉴질랜드 두 달째, 남섬의 끝자락인 블러프(Bluff)란 곳에 왔다.

여기서 머물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길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차에 얼떨결에 경찰관 차를 얻어 타고 위쪽 타운인 인버카고(Invergargill)에 가는 도중, 전날 오로라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블러프가 오로라 관측 명소라는 경찰관 말에 혹해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북극이나 남극과 맞닿은 곳이어야 하고 그 외 지역에서는 그냥 밝은 빛으로만 보인다고, 다양한 색깔을 담으려면 카메라의 장노출로밖에 표현이 안된다고 했다. 게다가 이날은 흐렸다. 당연히 티브이에서 보는 화려한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원래 남섬 아래 스튜어트섬(Stewart Island)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왕복 12만 원이나 되는 뱃삯이 아까워서 그냥 포기했다. 예전에는 섬으로 들어가는 고기잡이 배가 여행자를 데려다 주기도 했다. 뉴질랜드의 주 수입원이 관광자원이 되다 보니 더 이상 그런 호스트의 호의(Hospitality)는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같았다.


오세아니아 대륙의 남쪽 끝, 남극을 바라보는 곳에 서니 눈을 크게 뜨면 남극이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니 더 얼음같이 느껴졌다.

난 행복한 것 같다. 여정이 자꾸만 일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틈나는 대로 계속 '나는 일탈 중'이라고 생각을 하려는데 쉽진 않았다.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뉴질랜드에서도 웨스트 코스트는 서쪽의 district를 뜻함)로 방향을 잡고 위쪽으로 히치하이킹하다가 중간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지나가는 차를 향해 미소를 던지며 엄지를 올리던 게 두 시간 정도 지났나? 딥톤(Dipton)이란 곳에서 헤이즐넛 팜을 운영하는 라모나(Ramona)가 나를 픽업했고, 얘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자신도 자원봉사여행 네트워크인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호스트라고 소개하며 며칠 머물러보지 않겠냐 제안해서 별다른 계획이 없는 나는 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기회)를 흔쾌히 수락했다.


라모나는 마오리 원주민의 피가 진하게 느껴지는 여성이고, 킨(Kene)이라는 아저씨와 함께 팜을 운영하고 있었다. 창고를 꾸며서 안에 카라반을 두고 수도시설과 요리 설비를 설치해 생활공간으로 이용했는데 뭔가 캠핑하는 기분이었다. 라모나와 킨은 바깥의 또 다른 카라반에서 잠을 잤다.


크리스마스 5일 전이었다.

라모나와 킨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가족모임을 위해 집을 일주일 정도 비울 거라는데 나보고 집 좀 봐달라고 했다. 집을 비우는데 팻과 가축이 신경 쓰였나 보다. 가든에 물주며 개, 고양이, 닭들의 먹이를 챙겨주길 바랐다. 연휴 동안 이동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피할 곳도 필요하고 해서 승낙했다.

길에서 픽업한 히치하이커에게 집을 맡기고 가족모임을 떠나는 이 사람들도 프리 소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거나, 그에게 집을 맡기고 가족모임을 가버리는 사람도 그렇고,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따라가 그들이 부재중일 때 집을 봐주는 나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배회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하루는 토끼 한 마리가 얼쩡대면서 자꾸 헤이즐넛을 주워 먹는다고 킨이 잡아야겠다며 총을 꺼내 들더니 내게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그는 꽤 먼 거리에서 토끼를 쌍안경으로 포착하더니 이내 총을 쏴서 토끼를 넘어뜨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직 숨은 붙어있는데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킨의 요구대로 내가 토끼의 목숨을 끊었다.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생명이 다른 생명을 취할 때는 생존을 이어가는 행위인 먹을 때뿐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아무리 뉴질랜드에서 토끼가 유해동물로 치부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함부로 생명을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킨은 토끼를 그대로 두면 썩으면서 오염될 수 있다고 태우려 했고, 난 그걸 먹어야겠다며 손질법과 요리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손에 피를 묻혀가며 배를 갈라 내장을 정리하는데 손바닥 반만 한, 내장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 꺼내보았더니 새끼인 듯싶었다. 죄책감이 더 들었다. 토끼를 정리하고 훈제 기구를 이용해서 훈제한 후, 네 조각으로 잘라 내가 두 조각, 킨과 라모나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토끼를 먹는데 왠지 자꾸 눈물이 났다. 뭔가 자꾸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다음 여정을 위해 길을 떠났고, 토끼를 이틀에 걸쳐 다 먹었다. 매 순간 토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이후에도 몇 번 살아있는 닭을 잡고 손질하는 일이 있었는데, 생명을 끊고 '먹는다'라는 행위를 할 때마다 경건해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킨은 몸이 자주 아팠다. 하루 종일 안 보여서 물어보면 몸이 아파 누워있다는 적이 많았다. 온몸에 피부병의 흔적이 눈에 띌 정도였는데,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웃음 짓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몸이 불편하면 짜증내고 불평하고 다른 사람 원망이나 하는 모습이 익숙한 내게 그의 웃음은 이색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불평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킨, 고통 중에 저리 웃을 수 있다니. 옆에서 웃으며 살아가는 라모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후, 호주로 건너갔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왔을 때, 이곳을 지나게 되어 킨과 라모나를 찾았는데 킨의 건강은 좀 더 안 좋아졌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One day, we went rabbit hunting. He made 1st shot, and I put her down.

I took the skin off, cleaned up, cut in pieces, and smoked her. I just couldn’t let her thrown out on a fire. I took one piece and fed me for 2 days. It was so thankful.


블러프의 캠핑장과 주변
언덕위에서 본 블러프, 스튜어트 섬으로 들어가는 항구가 있다.
사람 다니는 길에 풀어놓은 소떼.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세상의 끝에서 남극을 바라보며. At the edge of the world.
블러프 인근 타운인 리버톤(Riverton)의 언덕. 아파리마(Aparima)라는 마오리 지명을 같이 쓰는데, 뉴질랜드에는 두개의 지명을 가진 곳이 많다.
섬나라라 그런지 요트가 많았는데 개중에는 요트를 집처럼 꾸며서 생활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한산한 바닷가 마을이지만 어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보다 은퇴한 사람들이 귀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어촌의 느낌은 없었다.
뉴질랜드에는 사람보다 소의 인구가 더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오면 소들이 구경하러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수확시기는 지나 잡초를 모아 건초 만드는 일을 주로 도왔다.
창고를 개조한 거실과 주방.
머무는 동안 생활했던 창고내 카라반. 평소에 애완견이 생활하는지 문만 열리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와 침대위를 차지해서 살살 달래가며 내보내곤 했다.
팜근처에 흐르는 강(Oreti river)이 있어서 다리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워봤다. 송어나 연어를 기대했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다.
라모나와 킨이 가족모임으로 집을 비웠을 때 퀸즈타운을 방문했다. 퀸즈타운 가는 도로옆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
뉴질랜드에는 진드기가 없는지 잔디밭에 쉽게쉽게 눕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타운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두번째 방문했을 때, 나에 대해서도 스크랩해 둔 노트가 인상적이었다. 라모나의 자원봉사자 기억법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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