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이 Hay Oct 26. 2022

뉴질랜드의 히피들

히피 커뮤니티

뉴질랜드 북섬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낸 후, 배를 타고 남섬으로 내려와 시계방향으로 동선을 잡고 움직였다. 오아마루(Oamaru-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 남쪽 250㎞ 정도 떨어진 도시) 근처 팜에 일정을 조율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이 팜은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 소비 생활을 지향하는 곳이었고, 뉴질랜드 전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만들어 대여와 판매를 병행하는 곳이었다.


내가 조인했을 때 이미 두 커플과 두 명이 있었고, 다들 축제에 관련된 사람들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일반인 같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스티브와 독일 출신의 화가 나탈리는 축제를 다니며 만나게 된 커플이다. 영국 이주민 후손은 브리티시 키위, 스코틀랜드 이주민 후손은 스코티쉬 키위, 아일랜드 이주민 후손을 아이리쉬 키위라 각각 불렸는데, 스티브는 스코티쉬 키위였다. 영연방은 뉴질랜드에서도 지역적으로 구분되어 무리 지어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목수 그렉과 호주 퍼스 출신의 클레어는 5년 정도 함께 호주 전역을 여행하다 아이가 생겨서 뉴질랜드에 정착한 경우였다.

다른 두 명은 각각 요가와 노래하는 가수였는데 다들 한 달 반쯤 후 타카카(Takaka―뉴질랜드 남섬 북쪽에 있는 타운, 히피 타운이라 불림)에서 개최되는 축제에 합류한다고 했다.


머무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개조한 창고와 버스를 개조한 숙소 외에 카라반이 있었고, 나는 호스트인 피터가 사는 집에서 생활했는데 인테리어나 내부장식이 오컬트적이라 마법사나 마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사방을 봐도 도로나 건물이 아닌 숲과 나무들뿐이고 차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새소리만 들리니 자꾸 현실감이 떨어져 갔다. 숲의 요정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고, 나도 모르게 자연과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불빛도 꼭 필요한 만큼만 밝히다 보니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곤 했는데 어둠이 주는 두려움이 아닌 포근함이 느껴져 왠지 내가 자연에게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 처리해야 할 많은 나뭇가지는 앞마당에서 자주 모닥불 피울 수 있는 좋은 이유(핑곗거리)가 되었다. 소나무라 태울 때 나는 솔향이 그럴듯했다.

나무를 베어내는 사람을 'feller'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나무 위로 올라가 위에서부터 가지 하나씩 베어내 땅으로 떨어뜨리는데 그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려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거대한 나무를 베는데 그냥 뚝 잘라 쓰러뜨리면 그게 지붕으로 떨어져서 모든 게 박살 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니 가지 하나씩 떨어뜨리는 게 상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벌목하는 친구는 암벽등반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질의 남자였는데 베지테리안이라고 해서 그 근육은 대체 다 뭐로 채워진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콩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실소했다. 콩이 해답의 전부는 아니고, 식물성 영양소를 합성해서 섭취할 수 없는 동물성 영양소는 비타민 B12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했다.

그도 그렇지만 여기 모인 대부분이 베지테리안이었는데, 이 자연 친화적인 사람들의 영양소에 대한 지식은 영양학을 공부한 사람 수준이어서 들을수록 새롭고 흥미로웠다.


머무는 동안, 사람들이 와서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머물다 가곤 했다. 개중에 브라질들로 구성된 그룹이 3일간 머물렀는데 하루는 식당 홀을 통째로 빌려 통제를 하고 무언가를 하는 듯했다. 뭔가 궁금했고, 나도 조인하고 싶었지만 껴주질 않았다. 그들 말로는 남미에서 행하는 신성한 의식이라고 그룹 외 사람들은 함께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의식 하나를 목적으로 그룹에 들고 싶을 만큼의 강한 호기심은 들지 않았고 염치도 없는 듯해서 마음을 접었다. 아마 그룹에 껴달라고 했어도 거절당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아야와스카(Ayahuasca)'라는 약물을 복용하고 나서 환상을 경험하고 무의식 속에서의 자아를 느끼며 각성을 유발하는 등의 효과를 본다는데 그 약물의 맛이 역겨워서 토하고, 또 환상을 마주하는 동안 울고불고 난리 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모양이었다. 과거 남미에서 치료의 목적으로 쓰이던 약물이고, 깨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니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쯤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는 축제에 필요한 이동식 무대와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만들었고, 이후 타카카에서 열릴 축제를 위해 무대와 화장실을 운반했다. 나는 일을 도우면서 목수가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배웠다.

피터는 굳이 나에게 일을 강제하거나 작업시간(량)을 정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말을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그냥 편히 있으면서 소일거리가 필요하면 일감을 주는 식이었다.


이곳은 내가 처음 접한 히피 커뮤니티였다.

뭔가 영감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머물다간 사람 중 은퇴한 기자 한 명이 있었는데, 뉴질랜드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곳을 발견하게 된 나를 행운아라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치 하루가 빨리 지나갔지만, 주어진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좀 더 많은 뉴질랜드를 보고 싶었던 나는 이곳에서 2주 정도 머무른 후 길을 떠났다.


4주 정도 뉴질랜드 남섬을 돌아본 후, 크라이스트처치에 자리를 잡은 나탈리의 연락을 받고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나탈리와 함께 타카카로 향했다. 피터와 함께 만든 무대와 화장실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직접 보게 되었다. 피터는 만나지 못했다.

축제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류와 그냥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부류로 나뉘었는데, 나는 후자였다.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 축제였고 캠핑하며 생활했는데, 비가 오면 밖으로 뛰쳐나가 신이 내리는 것처럼 춤을 추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인상적인 히피들 천지였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자연 친화적인 사람들이 단기로 모이는 ‘레인보우 게더링(Rainbow Gathering)’이란 회합이 있는데, 그것과 흡사했다.


이후, 호주로 넘어가 3개월 후 다시 뉴질랜드로 오게 되었고, 내가 만난 이들을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미 오래되어 익숙해져 버린 듯한 오아마루의 완전한 자연과 호스트인 피터도 그렇고, 크라이스트처치에 자리 잡은, 이웃사촌이 된 두 커플도―자유롭고 섬세한 예술가 커플인 나탈리와 스티브,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 화재로 집을 잃은 그렉과 클레어 커플은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떠나기 전에 크라이스트처치 친구네 다다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가면 언제를 기약할 수 없는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서 모두에게 감사했다.



피터가 사는 집.
동화속에 있는 듯한 거실내 나탈리와 스티브 커플.
스티브는 마법사 같았고, 그가 있는 공간은 마법사가 사는 집 같았다.
부엌.
여러 형태의 숙소.
별처럼 반짝이는 풀벌레.
타카카의 페스티발 캠프.
비가 오면 축복이라며 신이 내린 것처럼 미친 듯이 춤추며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타카카에 히치하이킹 하라고 표시판을 만들어둔 곳.


이전 06화 프렌치 버스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