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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Hay Oct 26. 2022

넬슨의 언덕

와카투 마후아(Whakatu Mahua:Nelson Golden bay)

뉴질랜드 웨스트 코스트에서 히치하이킹하는 동안 두 번의 태풍을 겪으면서 젖고 말리고를 반복한 끝에 넬슨(Nelson-뉴질랜드 남섬의 북부지역 도시)에 다다르게 되었다.

마크라는 프랑스인 호스트가 운영하는 이곳은 팜이라기보다 무슨 개인 소유 자연보호구역―private nature conservation area― 같은 곳이었고, 자원봉사 활동도 주로 주변 정리와 조경 관련 일이 전부였다. 얼핏 할 일이 없어 보였는데 그 지역이 산언저리를 포함하다 보니 산길에 떨어진 나무들 치우는 일만 해도 끝이 나질 않았다.


마크의 집은 언덕의 중간 즈음에 있는, 타스만 포구(Tasman Bay)가 정면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곳에 있었고, 난 일을 도우며 카라반에서 생활했다.


마크는 시간제로 화학과 교수를 겸하며 작품 활동(그림)도 하고 뉴질랜드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마누카 나무(Manuka tree)의 추출액을 이용해 미용용품이나 건강식품 등을 만들어 가게에 납품도 하고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에 내다 팔기도 했다.


하루는 논쟁을 벌였다. 모든 현상이 화학 구조식처럼 맞아떨어져야 납득하는 초현실 논리론자인 마크는 이상향을 꿈꾸며 사람들에게 현실(내가 사는 세상)을 보여주려 애쓰는 나를 ‘에고(ego)’라고 콕 찝어주었다. 당시 나는 ‘에고’란 단어가 익숙지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 정의가 모호하지만 마크의 부연설명을 ‘(무의식 속에) 내가 바라는 것’ 정도로 이해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편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슬러지 해머(sludge hammer)로 등을 호되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는 세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나의 ‘에고’라는 거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 가지고 계속 말장난하는 것 같기도 해서 적당히 마무리짓고 싶었던 나는, 사람들에게 자각을 바라 왔던 내가 그냥 혼자 꿈꾸며 살아가는 ‘드리머(dreamer)’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는 또한 ‘인간 기본 욕구(basic human needs)’가 내가 무엇보다 선행된다고 믿는 ‘행복(happiness)’보다 중요하다고 다시 화두를 던졌다.

마크는 크라이스트 처치(뉴질랜드 남섬의 가장 큰 도시) 대지진의 아픔을 온몸에 새긴,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강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2011년에 일어난 크라이스트 처치 대지진의 피해자로, 그 재난 통에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접했다고 한다. 죽어가면서 고통을 잊기 위해 ‘마리화나’를 피우던 친구를 예로 들어주었다. 그 역시, 당시 사고로 척추에 손상을 입어 여태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그날 밤, 얘기 도중에 땅이 흔들린다며 패닉 상태가 되어가는 그를 혼자 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런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내게 점잖게 축객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고 전에는 그야말로 세상을 누빈 마크는 ‘여행(traveling)’을 ‘길을 잃는 것(get lost)’이라고 정의했다. 정해진 대로 시간에 맞춰 예상되는 기대치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면서 예기치 않은 만남(사람 또는 사건)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라고. 그것에 나도 동의했다. 나의 표류하는 인생을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의 본질에 접근하게 해 주었고, 나는 조금 홀가분해졌다.


웨스트 코스트에서 넬슨까지 리프트 해주면서, 관광지란 관광지는 다 들러가며 여행 가이드처럼 하나씩 설명해주던―여행안내 책자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사전에 읽은 게 분명한― 사이먼이란 독일 친구가 근처에 와 있어서, 같이 아벨 타스만 국립공원(Abel Tasman National Park)에 놀러 갔다. 모든 걸 계획하고 시간에 짜 맞춰 움직이느라 자신은 피곤하겠지만 나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 편했다. 계획된 대로 모든 일정이 정해져야만 하는 전형적인 독일인의 캐릭터가 강하게 녹아있긴 해도 그 DNA에 반항하려는 의지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간혹 보였다.

취사시설이 있는 캠핑장에서 캠핑했는데, 낮에 뻘에서 조개를 캐던 사람들이 바가지에 한가득 씩 조개를 담아와 씻어내고 있었다. 바지락 종류 같았는데 손가락 두 개 만한 크기의 조개도 몇 보였다. 우리도 준비해 간 고기류를 바베큐 그릴에 굽기 시작했다. 캠핑하면서 먹고 마시고 모닥불 피우고 하다 보니 감정이 말랑말랑해졌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하와이에서 새 가정을 꾸몄는데 없었던 동생들이 생겼다며 이듬해 즈음해서 방문한다고 설레어하는 그의 모습에서 ‘유럽 사람들은 참 결혼과 이혼에 대해 자유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렇게 확장된 가정에서 많은 형, 누나, 동생들과 함께 살아도 북적북적하니 재밌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포구로 떨어지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이먼과 헤어지고 아벨 타스만 국립공원에서 돌아온 나는 골든 베이가 보이는 넬슨의 언덕에서 일주일 정도 더 시간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He let me be more like me, I got bit more freer.



웨스트 코스트에서 넬슨까지 데려다준 독일여행자 사이먼이 데려간 이름 모르는 관광지-론리플레닛에 나왔을 게 분명한.
넬슨 가는 도중 들렀던 이름모르는 예쁜 마을. 사이먼의 즉흥적인 선택이었는지 론리플레닛에 나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언덕위의 마크가 사는 집. 이런 곳에 살면 영감이 쏟아질 것 같긴 했다.
여기 개들은 사람과 동급이다. 가끔씩은 사람의 말을 하고 싶어 안달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골든 베이가 눈앞에 있어 일과 후엔 늘 그 경치를 바라보며 커피나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즐겼다.
내가 생활한 카라반.
카라반의 외관. 우측은 우천시 연못의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돌을 쌓고 풀을 심은 모습.
넬슨의 언덕 위에서 바라본 골든 베이.
마크의 작품활동.
마크의 취미활동.
사냥개의 혈통이라 그런지 질주 본능이 있었다. 마크의 요청으로 담아본 컷. '질주본능'
아벨 타스만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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