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패션 블로거는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을까
소비가 미덕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활발히 경제활동을 해야 할 젊은이가 갑자기 미니멀을 한답시고 온갖 물건을 내다 버리고 소비를 자제하다니. 아마 누군가는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며 한소리 할지도 모르겠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명품 소비, 매 시즌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보란 듯이 전시되는 SNS 속 화려한 타인의 삶과 소비자의 구미를 끌어당기는 마케팅의 향연 속에서 나는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하게 되었을까?
나는 소위 말하는 호더였다. 호더는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맥시멀리스트의 개념을 넘어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에겐 책상 위에 물건을 쌓아 올려 제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게으르고 정리를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넓은 집에 가면 깔끔하게 살게 될 거라고 믿었기에 방의 평수와 부족한 수납공간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것은 옷이었다. 서랍장 한 칸에 가진 옷이 전부 들어가던 시절의 결핍을 지닌 채 패션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명분으로 컬렉팅 하듯 옷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입지도 않는 옷을 행거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행거 3개와 이단 행거 하나엔 그런 옷들이 빼곡히 걸리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고, 그렇게 방의 절반은 300벌이 넘는 옷이 차치하게 되었다.(그런데도 매일 입을 게 없었다.) 결국 나는 내 공간에서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물건은 많을수록 좋다던데, 되려 물건이 많아질수록 나는 가진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가지지 못하면 불행했으며 원하는 것을 가진다고 해서 행복하지도 않았다.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은연중에 괴로움을 느끼는 날들이 반복됐다. 차츰차츰 피로도는 쌓여갔지만 그럼에도 물건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변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바로 ’이사‘다.
20살 때부터 자취를 시작하면서 1-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확실히 짐이 늘어날수록 이사는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4평 단칸방이 텅텅 빌만큼 미니멀하게 살림을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이사를 거듭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집이 넓어질수록 짐은 무서울 정도로 불어났다. 조금 더 편리하게 살아보자고 샀던 물건들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이사 때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펑’하고 터지고 말았다. 이러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을 보면 ‘Packing Party(포장파티)’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박스에 넣고 필요한 것만 꺼내 쓰는 것인데, 실제로 이렇게 살아보면 가진 물건의 20% 밖에 쓰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정확히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치 않게 게으름과 이사 덕분에 뭔지도 몰랐던 Packing Party를 실천하게 됐다. 필요한 집기류와 옷가지 몇 개, 생필품들을 꺼내고 나니 생활에 필요한 것이 더는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박스가 쌓여있는데도 그 안에 있는 게 전부 뭔지 몰랐다. 그러니까 나머지 80% 정도의 물건은 전부 사치품이었다는 얘기다. 필요도 없는 물건을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아가다니, 이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최종적으로 이사를 마친 후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제일 좋아했고 그만큼 제일 시급했던 옷이었다. 처음엔 한 벌도 보내주기 싫더니 탄력이 붙자 너 입을 건 남기라며 걱정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워냈다. 지금도 옷의 개수는 변하고 있지만 운동복과 홈웨어를 제외하고 사계절 합산 50벌이 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옷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50벌 이상의 옷은 필요하지 않다.
옷의 가짓수가 줄어드니 내가 가진 옷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옷장이 가득 찼을 때 보다 내게 더 잘 어울리는 일관된 스타일로 옷을 입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난 후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가볍고 행복한, 비워낼수록 충만해지는 역설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이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끊임없이 소비하지 않으면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거친 세상 속에서 미니멀리스트의 길을 선택하게 되면서 느낀 것과 내 생각들을 낱낱이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의 경험의 기록들이 어딘가에 있을, 내면의 외침을 인지하지 못하고 풍파에 휩쓸려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