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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Jul 10. 2023

3평짜리 방이 주는 풍요로움

넓은 집보다 좁은 집이 좋아졌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한다. 사회에 속해있다 보면 타인의 욕망에 쉽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넓은 집, 비싼 차, 높은 학력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고, 나 또한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들을 손에 쥐고 싶어 안달 나있었다. 그 이외의 것들은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인정받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다른 삶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타인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나는 첫 자취를 4평에서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어서 계약했는데 어째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경악을 했다. 이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사냐고, 이렇게 닭장 같은 곳에서 살면 생활이 피폐해질 거라고 했다. 물론 방음도 잘 안 됐고, 매번 이부자리를 피고 접는 게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4평도 나름 살만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넓은 집에 살고 싶어 졌다. 큰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그럴듯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볼 미래를 상상하면서 좁은 집에 있는 시간들은 그저 ‘견디게’됐다.


그렇게 넓은 집을 가라는 권유 아닌 권유에 설득당한 나는 다음 자취방으로 조금 더 큰 평수의 오래된 방을 계약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깔끔함은 포기해야 했지만 넓어진 방이 좋아서 큰 집으로 오길 잘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좋은 것도 잠시, 늘어난 평수만큼 내가 관리해야 할 부분 또한 늘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작 몇 평 늘어났을 뿐인데 청소를 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4평짜리 방에서는 그저 몸을 뉘이거나 할 일을 하고 바닥이나 잠깐 닦아주면 끝이었는데, 넓어진 방에선 그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해지니 안락해야 할 집이 왠지 모르게 피곤한 공간이 된 기분이었다. 집이 오래되다 보니 보수해야 할 일도 많았다.


넓어진만큼 지저분해진 현관


항상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집을 넓힐 생각만 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된 지금, 붙박이장 하나 없는 본가의 3평짜리 방으로 돌아온 나는 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엔 본가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일찍이 독립하게 되면서 본가 방은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해 두었기에 얼룩덜룩한 셀프페인팅의 흔적, 낡은 가구들과 쓰지 않는 지저분한 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잠시라도 들를 때면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취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내가 가진 모든 짐을 정리하고 방을 가꾸고 나니 이제는 거실로도 잘 나가지 않을 만큼 이 3평짜리 작은 공간을 사랑하게 됐다.


잠시 인테리어를 전공했을 때 알게 돼 지금까지 좋아하는 건축가가 있다. 스위스 태생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다. 그는 바닷가 앞 4평짜리 집에서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 집의 내부에는 정말 필요한 것들만 꼭 맞춰 들어가 있다. 그렇게 으리으리한 건축물을 잔뜩 지은 위대한 건축가가 선택한 집이 소박한 4평짜리 집이라니. 나는 집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해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공원, 바다와 강, 산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집 밖으로 조금만 나와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그럼에도 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결코 채워지지 않을 끝없는 욕망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지분을 차지해야 스스로를 인정하고 만족할 수 있을까.


요즘은 가끔 미래에 짓고 싶은 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집을 가지고 싶다. 편히 쉴 수 있으며 창밖엔 푸른 자연이 펼쳐지는 곳. 그런 곳이라면 굳이 비싼 그림도 필요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의 시초는 자연이었을 테니.


물론 나는 현대 문물을 잘 활용하고 싶고, 이에 대한 이점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면의 요구를 짓밟아야 할 만큼 자본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다. 아직 나는 욕심을 많이 버리지 못했고, 그 욕심으로 인해 힘들어질 때도 많지만 미니멀 라이프는 내게 멀리 서서 관망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니게 해 준다.


작지만 정돈된 3평짜리 방


이제는 뭔가를 소유하는 삶보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 가벼운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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