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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Jul 27. 2023

우울증 환자가 되어 삶을 생각하다

오늘은 벌써 약을 받아온 지 3주가 되는 날이다. 상담에 늦지 않기 위해 언제나 그래왔듯 서둘렀다. 그나마 코로나가 해제된 후, 마스크를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받는 상담만큼 고역 또한 없었다. 상담 때마다 신파극을 찍는 나로서는 억지로 쓴 마스크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오는 눈물 콧물을 마스크 안에서 훔치는 것만큼 귀찮은 것도 없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오직 선생님 한분이었다. 3주마다 주어진 30분 이야말로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병원 옆에는 키즈치과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오며 가며 나를 알아채는 아이 친구 엄마라도 마주칠까 전전긍긍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병원을 방문하는 그때마다 나는 불안으로 가슴이 뛰고는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찾은 병원 안은 사뭇 포근하다. 스피커에서는 어디선가 들어본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대기 의자 앞 탁자에는 각종 마음 치료와 관련된 책들이 즐비하다. 기다리는 동안 한 번쯤 들여다 볼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런데에는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듯, 책 겉표지가 빳빳하게 날이 서있다.




이미 2년도 더 된 상담에는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 앞 커다란 책상과 그 뒤편으로 책들로 빼곡히 차있는 책장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같은 물음과 같은 대답.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어요. 가끔 쳐지는 날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잘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무기력한 날들이 태반이었고, 약을 먹지 않으면 약 부작용으로 심각한 어지러움이 뒤따랐다. 그 때문에 습관처럼 아침이 되면 약을 집어삼키는 날들이 태반이었고, 아마 부작용만 아니었다면 약을 빼먹은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어느 날 임의로 약을 끊는 날이 있었고 그로부터 잘 치료되어 가던 우울증은 증세가 이전보다 악화가 되었다. 지난겨울 나는 독감보다도 지독히 앓았다, 무기력증의 늪. 그런 내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잠에 들기 어려웠던 어느 날 밤, 너무 슬퍼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날에는 그런 스스로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작게는 양치질까지 어려워 반종일 누워 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우울증은 실은 그런 나보다 우리 가족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온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새들이 내 곁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며, 졸리면 졸리다며 허벅지를 끌어안고 누워 머리를 비볐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슬프게도 '엄마'였다.  


그런 내가 치료받기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올봄부터 다시 시작한 치료로 인해 이전에 먹던 약용량보다 증량되었고, 다행히 차도가 나쁘지 않아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덕분에 이전에 느꼈던 정상적인 감정의 파고를 가끔은 느낄 수 있어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다시금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결국 가족 때문이었다. 여전히 사람 만나기가 두렵고 슬프지 않은 얼굴을 애써 괜찮은 척 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곁에 사랑하는 가족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고 일상의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우리 아이들과 남편 덕분이었다.




오늘은 상담이 꽤나 일찍 끝났다. 평소 같으면 그저 내 감정에 도취되어 말하다 떨어트린 눈물방울로 온 얼굴이 도배되어 나왔을 텐데, 오늘은 어쩐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상담하는 날까지 보낸 나의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오늘만큼은 선생님의 조언으로 상담의 상당 부분이 할애되었다.


선생님은 한참을 걱정했다.

그동안 억지로라도 하던 필라테스를 멈추고 열정을 다하던 글쓰기에 펜대를 내려놓은 것에 대하여.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골조가 튼튼해야 된다고 말했다. 단단한 토대를 기반으로 지진이 나도, 폭풍과 해일이 덮쳐도 끄떡없는 건물이 되는 거라고. 우울증은 그와 같았다. 기본 루틴이 건강해야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것에 비교하면 나의 생활은 너무나 불규칙하고 병약했다.


잠을 잘 자고, 세 끼니 잘 챙겨 먹고, 운동을 하며 유지해야 하는 건강한 삶의 균형이 무너져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자는 도중 세 번이나 눈이 떠지곤 했다. 운동이라 하면 아이 등하원에 소요되는 3 천보가 하루 활동량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아이가 등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들으면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흔히 의사를 찾거든 뻔한 이야기를 듣고 온다며 농담 아닌 농담처럼 툴툴대곤 한다.

술 마시지 마세요, 몸무게 감량하세요, 운동하세요, 탄수화물 줄이세요 등등.


어쩌면 내가 들은 것 역시 일종의 뻔한 조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상담은 내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약이 모든 걸 치료해 주겠지 하며 가졌던 기대, 다시 잘해보기로 결심했으면서 자꾸만 무력감에 중독되어 포기해 가던 일상의 사소한 숙제들. 다시 끌어올려야만 했다. 우울증은 그저 약으로만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의 바탕에는 삶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나온 건강검진 결과를 보며 안도했던 나를 돌이켜 보니 많은 생각이 일었다. 지난밤 살기 싫다며 울부짖던 내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죽고 싶을 만큼 슬펐던 나는 실은 살기 위해 발악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첫아이를 낳던 그날 그런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여름 무더위 속 지독한 입덧을 참아가며 열 달을 애지중지 품어온 우리 첫아이가 태어나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모두가 우리 아기를 축복해 주던 그날 아침.


하나뿐인 딸이라며 불면 날아갈까 제 몸뚱이 희생해 가며 고이 키워주신 엄마의 온정이 유달리 생각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삶'을 생각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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