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세계

오늘의 메뉴는 비프 칠리

by 돌아온 돌보


집에서 먹는 밥이 너무나 좋다.

갓 지은 밥에서 나는 구수한 밥 냄새도 좋고, 고슬고슬 쌀 한 톨 굴러다니는 모양새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보글보글 냄비 끓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피어오르는 맛있는 연기가 잠든 미각을 일깨우는 것도 설렌다. 제대로 된 반찬 하나 없어도, 김에 밥을 냉큼 싸서 한입에 톡 털어 넣으며 오독오독 씹는 깍두기의 맛 역시 일색이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식탁에 둥글게 모여 앉아 소곤소곤 떠들어도 귀에 익히 잘 들릴만큼 소박한 공간도 소중 그 자체다.

시끌벅적 여기요 저기요 들썩이는 소음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단란한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저 보리차 한 사발에 흰쌀밥을 툴툴 말아먹어도 행복한 집밥의 시간. 나는 집밥을 사랑한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건 결혼하고나서부터.

떡국 하나 끓이는데 국간장 대신 진간장을, 멸치 스무 마리를 넣어 비린내가 진동하는 수준을 자랑했던 내가, 이제는 그릇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커트러리 하나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주책맞는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무얼 담아 먹을까, 여기에 어떤 걸 먹으면 아주 예쁘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순수한 고민의 시간을 사랑한다. 음식을 먼저 정하기보다 그릇을 은근히 바라보며 이 아이에게 걸맞은 요리를 해야겠다며 청승맞은 생각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양재천 코앞 프랑스 커트러리 브랜드 '사브르'에 가서 두 세트를 구매하였다.

옥빛의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찬란한 은빛의 디너 포크 수저세트를 골랐다. 무지갯빛 다채로운 색상 중 어떤 걸 고를지 멀뚱히 서서 행복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상점 안을 다정히 비추는 가을 햇볕의 따스함이 내려앉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인테리어는 정말로 파리 어느 한 골목의 '사브르'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색깔도 다양한 커트러리 외에도 색색의 프라이팬, 미색의 도자기류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곳은 찾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끌고, 찰칵대는 사진 행렬을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그 안에서 배회하며 무얼 만들어 먹을까 고민하였다.


프랑스 커트러리 브랜드 '사브르' 양재 매장에서


그래서 결정한 오늘의 메뉴는 비프 칠리.

우선, 재료가 충분한지 냉장고를 열어 상태를 확인한다. 기호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양식 재료이지만, 나는 주로


당근, 양파, 베이컨, 소고기(부위 상관없음), 홀토마토, 비프스톡, 소금, 후추, 버터, 바질, 파슬리, 빈(Bean) 캔 통조림, 칠리파우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시지를 준비한다.


빈(Bean) 캔 통조림과 칠리파우더는 인터넷으로 직구해 구비해둔다. 나는 주로 집밥으로 양식을 해 먹기 때문에 향신료 등의 재료는 항상 갖추고 있는 편이다.


과정은 간단하다.


1. 베이컨을 볶는다.

2. 갈색빛이 완연해진 볶은 베이컨을 그릇에 꺼내 두고 베이컨을 볶은 냄비에 채 썰은 당근, 양파를 올리브유와 버터에 둘둘 볶다 소금 후추 간을 한다.

3. 여기에 볶은 베이컨을 첨가하고 홀토마토와 빈(Bean) 통조림 그리고 물 적당량(자작하게 재료가 잠길 정도)을 붓고 비프스톡 두 스푼 간한다.

4. 끓으면 소고기를 넣고(나는 양지 국거리를 사용함) 칠리파우더로 간한다. 토마토 풍미가 부족하면 토마토 페이스트나 케첩으로 간을 더한다.

5. 적당히 저으며 15분 정도 끓인다. 끓는 동안 기름을 두른 팬에 소시지를 굽는다.

6. 다 끓이면 밥에 비프 칠리를 내놓고 그 위에 소시지와 파슬리로 장식한다.


Tip : 칠리파우더를 넣기 전에 국자로 따로 퍼 준비하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토마토 스튜가 완성된다.

완성된 비프칠리 모습


이렇게 완성한 비프 칠리에 19 빈티지 디코이 카베르네 소비뇽을 더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피클이나 절인 올리브를 같이 내놓으면 밖에서 먹는 근사한 식사 하나도 부럽지 않은 메뉴가 완성된다. 도란도란 함께 어우러져 이야기 꽃을 피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데에는 남편의 일조가 있었다. 그는 내가 어떤 요리를 하든 리액션이 대단하다. 사람인지라 가끔 요리를 망치기도 하고, 결혼 초반에는 썩 잘하질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늘 칭찬일색이었다. 어떤 음식을 하든 항상 '와 정말 맛있다'며 연신 감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냥 해주는 말이겠지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편으론 힘이 나고 자신감을 찾는 것이었다. 조금 망쳤다 싶은 날에도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남편도 아마 내심 매번 평이 엇갈리긴 할 것이다. 어떻게 한결같이 맛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는 한결같았다.늘 맛있다 예쁜 말을 잊지않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요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요리가 아닌가.



우리는 집밥을 사랑한다.

온종일 밖에서 지쳤던 심신을 릴랙스 할 수 있고, 허기를 채우며 할애하는 오붓한 시간 속 피어나는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집뿐이다.

아무리 멋지고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쫓기듯 먹기보다 집에서 먹는 것이 보다 편안하다. 그래서 별 반찬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이런 안락한 공간에서 작정하고 만들어먹는 만찬이라면 얼마나 멋질까. 그래서 나는 요리하는 것을 사랑하고 한식과 양식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만든다.


왼쪽은 한식(오뎅탕,불고기), 오른쪽은 야심차게 준비한 라자냐


내 곁에는 소중한 미식가들이 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대접하는 최고의 식사. 요리를 만들면서 느끼는 색다른 뿌듯함, 함께 먹으면서 가지는 다복한 시간 그리고 먹고 나서 편안히 즐기는 대화의 공간. 이 모든 것의 삼위일체가 일어나는 곳, 우리 집 식탁이다.


집밥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오늘은 이 메뉴 내일은 저 메뉴 할 것 없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수많은 메뉴를 함께하며 가지는 사랑의 시간은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


와인과 함께한 비프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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