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의 네온사인 불빛이 반기고, 새까만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그 이름도 찬란한 홍콩. 마치 어제 다녀온 듯한 생생한 기억들로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다.
홍콩의 밤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곳에서 먹은 새우 완탕면의 탱글탱글한 새우도, 소호 밤의 거리에서 마신 성난 기포가 혀끝을 쏘아대는 시원한 스텔라 생맥주 한잔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처음 홍콩에 발을 디딘 건 14년도, 이제 막 결혼한 따끈한 신혼부부 1년 차.
해외여행이라고는 고작 신혼여행과 혼자 떠난 유럽이 전부인 초짜 여행러인 내가 홍콩을 방문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현란한 네온사인이 얼굴을 비추고, 까만 밤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은 이국적이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마냥 설렜고 가슴이 쿵쾅댔다. 갖은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상점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새어 나오는 뼈가 시리는 차디찬 에어컨 냉기로 이마의 땀줄기가 식을 때, 아 이곳이 홍콩이구나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옹핑 케이블카, 빅 부다, 피크트램 전망대, 침사추이 산책로 등, 참 명소가 많은 곳. 그 수많은 곳들을 쏘다니면서 홍콩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한여름 속 홍콩의 밤은 우리에게 힐링 그 자체였고, 그 언젠가 다시 방문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여름휴가를 마무리하였다.
첫 방문을 하고 몇 년이 흘렀을까,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있었다.
걸음마를 뗀지 얼마 안 지난 아이를 안고 우리는 다시 한번 홍콩으로 떠나게 되었다.
사실 그 맘 때쯤 홍콩은 중국으로부터 자유 투쟁을 벌이고 있던 민감한 시기였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해야 되는 터라,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위험하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관광이라니 싶어 마음의 갈등이 많이 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그날 우리의 홍콩을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강행했다, 마지막 홍콩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떠났다, 홍콩으로.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짐은 이민가방 수준으로 싸야 했고, 아직 말도 서투른 아이였기 때문에 모든 의사소통을 아이의 울음소리와 표정으로 이해해야 하던 때였다. 하지만 역시 여행의 설렘은 언제나 같았다. 아무리 힘이 들지언정, 그날의 홍콩을 다시 찾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가만히 있질 않는 것이었다. 빠른 맥박의 진동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홍콩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무사히 도착한 첵랍콕 국제공항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자 시위 행렬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중지된 것.
불안한 마음으로 택시를 겨우 잡아 시위를 피해 한참을 달려 호텔로 간신히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괜히 왔을까, 아이를 데리고 왔기에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 약간의 후회를 하긴 했지만, 이왕 온 것 여행카페에서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안전하게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 우리는 소호의 밤의 거리를 찾았다. 신혼 때 찾았던 펍은 그곳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어우러져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간 우리는 거리의 계단에 털썩 앉아 나란히 생맥주 한잔씩을 시켜놓고 그 더운 여름밤을 즐기기로 했다. 아이가 어려서 제대로 누리기는 어려웠지만, 예상외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밤이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신이 났던 순간이었다.
총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기에 빠르게 다음 여행지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음날엔 우리가 그리워하던 피크트램을 타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데리고 복닥거리는 피크트램을 타는 일은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혼 때 경험한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또다시 반할 수밖에 없었던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평소와 같이 보채지도 않고 우리를 잘 따라와 줬다. 시위 때문에 불안한 기운이 마음 한켠을 껴안고 있었지만, 이런 뜻깊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몹시도 짧았던 두 번째 우리의 홍콩.
투쟁의 충격은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마치 교과서에나 볼 수 있던 70-80년대의 우리를 재현한 듯했다. 홍콩의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시위를 단행했고, 현장에서 우리는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여행객이었지만 진정으로 홍콩을 응원하는 우리의 애절한 마음을 몰라주는 듯, 중국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던 때였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던 여행이자, 지금도 잊지 못하는 홍콩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너무나 행복했던 우리의 홍콩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딤섬을 먹으러 간 식당에 들어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던 주인 아저씨의 환한 미소, 식당 창밖에서 아이에게 따스한 인사를 건네던 홍콩 시민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쩌면 홍콩 역사 속의 길이 남을 그날의 투쟁.
우리는 그들과 함께였고, 하나의 마음으로 단결했으며, 애끓는 마음으로 그들의 자유를 응원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그때의 순간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외침. 슬픔이 턱끝까지 차올라 여행지를 방문할 때마다 마주친 시위 행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더욱 뜻깊던 시간들. 그들과 함께였기에 그때의 추억은 후회 없는 최고의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금세 마카오로 향했지만, 항구에서 홍콩을 뒤로 한채 떠나던 그 어려운 마음은 지금도 내 기억을 눈물로 적신다.
아이는 이제 벌써 다섯 살이 되어, 그날의 여행을 또렷이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마지막 홍콩에서의 우리 모습을 잊지 못한 채 그리워 살아갈 것이다.
아직도 그날의 홍콩에 머무는 아쉬운 기억을 되살리며, 이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