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동 취재기

코로나 시대 괌 출국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께

by 돌아온 돌보


요란스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출국하는 날.

진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장박동이 눈까지 느껴졌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

시작은 이랬다.


"우리 코로나 잠잠해지면 해외나 갈까?"

"이 시국에 어딜 가. 아직 해외 가기 힘들지 않아?"

"안되면 그때 가서 취소하면 되지"


그렇다, 상황 봐서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수수료 문제는 크겠지만.

그리고 4월 말, 우리는 코로나 확진이 되었고, 덕분에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티켓팅 줄은 생각보다 짧았다. 이른 아침에 문전성시를 이루던 3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국이었다. 확실히 코로나 때문에 해외 입국객이 줄어든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전 시대보다 서류가 하나 추가되었다. 우리 부부는 모두 3차 접종자였기 때문에 영문 예방접종증명서만 있으면 되었다.


다섯 살 우리 딸 서진은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 같으면 내 자리였을 텐데, 이제는 따님께 자리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역시 부모는 희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입국심사는 몹시 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마지막 토익이 2013년이었으니, 귀도 닫혔고 입도 막혔더라. 때문에 입국심사에서 나는 얼음처럼 꼼짝 못 하고 예스-예스만 반복하는 로봇처럼 서있었다. 나의 기우였을까, 입국심사의 99퍼센트는 한국인이었고, 영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분명히, 티켓팅 줄은 짧았는데 입국심사는 한 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하는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코로나 시대가 진정 맞는 것 인가.




'하파 데이' 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니, 구암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 분명히 '해외'를 왔는데, 이곳은 구암동이 분명하다. 4시간 반 비행을 했는데, 제주도에 온 듯한 착각. 반가워야 될지, 섭섭해야 될지 모를 어리버리한 상황이었다. 서둘러 렌터카 업체를 찾아갔다. 우리가 빌린 곳은 '닛산 렌터카'. 줄을 섰는데 "잠시만요." 하며 어깨를 밀치며 지나가는 한국인들. 그 순간 포기했다. 우리는 미국 코리안 타운엘 왔다!




적도부근의 작열하는 태양, 그곳이 괌이었다. 여행 첫날의 해가 밝았고, 푸른 바다에 까맣게 비치는 산호마저 사랑스러운 날씨였다.

SPF110도를 자랑하는 바나나선보트 선크림을 ABC 스토어에서 구매해서 덕지덕지 발랐다. 그럼에도 태양열에 살 껍질이 벗겨지는 날씨, 아 이곳이 괌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의 숙소는 두짓타니. 워터슬라이드만 50번 탈 때까지 지겹도록 물놀이를 했다. 물론, 나는 제외다. 서진이와 남편은 풀에서 나오질 않았다. 우아하게 선베드에 누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펼쳐 들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온 내게 선베드는 제격이었다. 점심은 수영장 내에 있는 '타시 그릴'에서 시그니처 메뉴라는 '코코넛 쉬림프'와 '피시 앤 칩스'를 시켰다. 괌은 유독 새우가 많은 곳이다. 새우가 많이 잡히는 걸까? 어설픈 내 추측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새우요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크리스피한 튀김옷에 코코넛이 듬성듬성 묻어있고 속은 수분을 잔뜩 머금은 촉촉한 통통살이 가득한 새우요리였다. 소스는 새우튀김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칠리소스. 시그니처 메뉴다운 맛이었다.

두짓타니에서 바라본 오션뷰와 타시그릴의 시그니처 칵테일. 딸기와 오렌지맛이 번갈아 나는 과즙미 가득한 칵테일이었다.
바삭한 코코넛 튀김옷이 매우 잘 어울렸던 두짓타니 '타시그릴'의 시그니처 메뉴 코코넛 쉬림프


점심을 먹은 후 서둘러 GPO(괌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향했다. 물론 괌이 두 번째 인 우리는 가자마자 ROSS 사냥에 나섰다. 요즘처럼 고환율 시대에는 무조건 할인템만 노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둘째 옷 다섯 벌, 서진이 옷 세벌, 스노클링 장비, 나의 수영복을 겟했다. 신나게 오전 물놀이와 오후의 쇼핑을 마친 우리는 누운 지 5분 만에 잠들어버렸다, 아이가 잠든 후 우리의 맥주파티는 금세 잊은 채 -




두 번째 날, 남부 투어가 시작되었다.

입기만 해도 패션 센스가 넘치는 듯한 데님 점프슈트를 골라 입었다. 두 아이를 낳고 늘어져버린 내 뱃살을 깜박하고 입은 점프슈트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도드라지는 뱃살 때문에 스트레스였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총 세 포인트로, 피시아이 마린파크 - 이나라한 천연 수영장(폐장, 근처 사진만 찍고 옴) - 솔레다드 요새 순으로 다녀왔다. 차만 타면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뜨거운 에어컨 바람에도 감사해야 하는 불타는 날씨였다. 그럼에도 해외에 나가면 왜 평상시 짜증 났던 부분들 마저 인내심이 느는 걸까.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 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행이기에 그저 즐거웠다. 풀 한 포기도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서진이는 신이 났다. 11개월, 17개월 다녀온 괌, 홍콩-마카오는 기억도 못한 채 본인의 첫 해외여행이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엄마 아빠가 들인 돈은 어디로)

점프슈트 입고 배에 힘주고 다녔던 둘째 날 남부투어와 이나라한 천연 수영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서진





세 번째 날, 두짓타니에서 마이크로네시아 몰까지 걸어가다.

거리는 약 2.5km, 걸어서 구글맵 기준 35분 소요. 실제로는 가는 데만 한 시간 반 소요. 오르막길이라는 함정과 지도를 잘못 읽어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덕분에 더위로 아이스크림처럼 녹을 뻔했던 경험.

마이크로네시아몰에는 역시 우리가 애정 하는 ROSS가 있고(GPO보다는 물건이 적음), 메이시스 백화점이 연결되어있으며, 이곳에는 폴로 매장이 크게 있다.(여성 랄프로렌 매장은 매우 작고, 남성 및 아동매장이 큰 편이다). 또한 메이시스에는 우리 딸이 사랑하는 파자마 삼총사 장난감들이 즐비해 있는 대형 장난감 매장도 존재한다. 원래 우리는 이 날, 투 러버스 포인트(사랑의 절벽)를 방문키로 하였지만 폴로 신상 세일을 30프로까지 한다는 택에 눈이 돌아가버렸다. 쇼핑 200불어치를 양손 무겁게 한 뒤에야 해 질 녘 귀가를 하며 오니기리세븐에서 늦은 저녁을 포장해왔다.


우리가 겪은 괌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주책맞다. 도로 옆 인도를 걸어가면서 조심하라는 경적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른다. 어련히 알아서 조심히 걸어가고 있거늘, 빵-대는 경적이 관심과 애정으로 느껴지자 '무슨 간섭이야'싶으면서도 이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츤데레 같은 것이었을까, 괌 사람들이 그랬다. 주책맞은 애정.




넷째 날, 여행이 한참 무르익었다.

전날 쇼핑에 눈이 멀어 가지 못했던 스페인 광장과 사랑의 절벽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곳은 무려 4년 전에 서진이가 11개월이던 시절 이민가방 수준으로 짐을 싸고 방문했던 괌에서의 첫 여행지이기도 했다. 돈 쓴 보람 없이 기억을 못 하는 서진이를 데리고 추억팔이 사진을 찍기 위해 두 포인트를 방문하였다. 스페인 광장에서 지난번 찍었던 사진 스폿을 찾아 신속하게 사진을 찍고 사랑의 절벽으로 출발하였다. 여행 중 자칭 휴먼 내비게이션이자 디제이인 내가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를 틀자 더위로 지친 우리 여행 분위기는 급반전을 맞이하였다. 괌 천혜의 자연과 어울리는 마이클 잭슨 노래는 여행 마지막 날을 경험하는 우리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몽글몽글한 분위기 속에 세 식구가 예전에 찍었던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었다. 석양 질 무렵 늦은 시각이어서 그런지, 방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둘러 노을을 보기 위해 투몬 비치로 향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바닷가는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이 찰떡으로 어울릴 만큼 24k 금덩이 색깔이었다. 투몬 비치에 비치는 윤슬 위로 우리의 지난날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며 도리어 지나친 관심의 칼 끝을 겨눴던 지난날이 그대에게 사무치도록 미안했다. 오로라 제 나체 부끄러운 듯 타오르는 노을 앞에서 이토록 애절하게 사랑하던 순간이 있었던가. 저물어 가는 석양 앞, 두 손을 꼭 잡고 한바탕 울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폭 파묻힌 어린 우리의 사랑. 이젠 다 잊어버리자, 훌훌 털어버리자고 다짐했다. 그 순간 아이 앞 우리의 진정한 화해. 슬픔이여 안녕.


투몬비치에서 바라보는 석양과 석양을 바라보며 하는 맥주한잔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귀국길은 언제 해도 아쉬운 발걸음이기에 여행기를 생략한다.

여행에 돌아와서 떠나는 또 하나의 여행.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때의 아름다운 석양을 추억하며 그대에게 문자를 남긴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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