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고 떠난 여행. 처음으로 함께 떠난 여행.
차디찬 겨울이 똑똑 문을 두드리던 11월, 우리는 로마행 비행 편에 몸을 실었다.
콜록 거리는 기침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그녀에게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기침. 우리는 걱정했지만, 엄마는 끝내 병원을 찾지 않았다.
"천식인가, 그냥 알레르기 반응이겠지."
대수롭지 않은 듯, 연이은 기침으로 숨을 헐떡이며 그녀가 말한다.
결혼 후에도 엄마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별 얘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란히 걸으며 얘기하는 그 소박한 시간이 내겐 몹시도 중요했다.
산책을 하면서는, 수십 번도 더 기침을 해댔다. 기침은 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통탄스러운 순간들. 어떻게서든 엄마를 큰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동네병원에서는 원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기침약을 받아와서는 증상이 경미 해지거든 괜찮아지겠지, 바보같이 견뎠다.
그 해 여름, 유난히 덥고 습한 기운으로 찐득거렸다.
격년으로 받아야 하는 건강보험 건강검진 통보서가 도착했다. 조금 늦게 받을까 고민하던 그녀를 서둘러 등 떠밀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폐 엑스레이 결과에서 기관지 확장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었다. 황급히 기관지 확장증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안 좋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즈음 소시지처럼 퉁퉁 부은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뭔가 몸이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엄마는 그렇게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았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온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병이었다. 그 때문에 폐 섬유화가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기침이 심해졌던 것.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미로 속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아 무너져 내렸다. 눈물은 기계처럼 흘러내렸고 수도꼭지 마저 망가져 잠글 수도 없었다. 밤낮없이 울었다. 오히려 그녀는 담담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된다며 눈물을 집어삼켰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속되었고, 나는 그때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그녀여야 했냐며 개탄스러워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원망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남편은 비행기표를 건넸다. 바로 로마행 비행 편.
엄마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에게는 엄마와의 첫 여행이었다.
5박 7일 짧다면 짧은 시간 우리는 이탈리아로 향했다. 길게 가기에는 그녀의 체력이 허락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짧은 여정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설렜던 것 같다. 떠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빠는 몹시도 반대했다. 그 성치 않은 몸으로 어딜 가냐며. 하지만 우리는 아마 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냥 즐겁지만은 못했다. 슬펐다. 그 말 이외에는 딱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청승맞도록 계속해서 흘렀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1월 로마는 꽤 추웠다.
가져간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채웠다. 두둑이 입은 후드티가 무색하게 팔꿈치가 시렸다.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지만 추위로 온몸이 시큰거리는 날씨였다.
아픈 엄마는 독한 약 탓인지 플라세보 효과 덕인지 기침이 잦아들었다. 엄마가 아픈 사람이었기에 긴 시간 기다려야 되는 관광은 할 수가 없었다. 공공장소가 하나의 예술작품인 이탈리의 거리는 그런 우리에게 최고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곳곳에 즐비한 멋진 조각상들은 우리를 반겨주었고, 춥지만 쾌청했던 날씨 덕분에 우리는 순탄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지하철도, 택시도 마다하고 그저 원 없이 걸었던 것 같다. 끝없는 돌길을 밟으며 지나치는 예쁜 상점들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로마 도시는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여행객으로 들끓었다. 한국에서는 역했던 담배냄새가 이곳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삼삼오오 흡연하는 로마 시민들의 모습들마저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로마는 커피의 도시였고, 카페는 언제나 반가운 곳이었다. 우리는 그 유명하다던 타짜도르 카페를 찾았다. 따뜻하고 고소한 카푸치노로 한기가 가득한 언몸을 녹일 수 있었다.
로마에서의 이틀을 보내고 피렌체로 숙소를 옮겼다. 피렌체는 로마에 비해서 훨씬 북쪽에 있다. 그래서인지 날씨가 훨씬 추웠다.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예약한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였다.
노을 지는 피렌체 전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야만 했다. 택시를 타고 가자는 나에게 엄마는 한사코 걷고 싶다 말했다. 폐의 절반도 못쓰는 엄마가 숨을 헉헉대며 언덕을 올랐다. 발끝이 아려오는데도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걷는 내내 말이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차를 타고 가면 후루룩 갈 수 있던 거리를 우리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대신 걸으면서 피렌체 시내를 찬찬히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피렌체의 석양을 나는 잊지 못한다.
콧잔등이 시려오는 날씨, 미켈란젤로 언덕 바닥에 철퍼덕 앉아 시원한 페로니를 한잔 곁들이며 감상한 그 황홀한 충격. 엄마와 손을 꽉 잡자, 뜨거운 눈물이 얼굴 주변을 지저분하게 장식하였다.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다음에 또 오자며 서로를 쳐다보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슬프지만 행복했던 그날 저녁 우리의 다짐. 꼭 나을 수 있다고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울먹거렸다. 꼭 나을 수 있어, 엄마.
미켈란젤로 언덕, 피사의 사탑 등 얼마간의 여정을 끝낸 우리에게 어느새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짧은 일정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우리에겐 그 어떤 보석보다도 귀중한 시간이었기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빛나는 기억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이 유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그때의 우리 여행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지쳐버린 엄마의 몸 때문에 여행이 어려워 장거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추억이 결국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여행을 그래도 다녀왔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끔은 엄마에게 아이들을 봐달라며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기도 하지만.
지난 이탈리아 여행의 중요한 기억을 곱게 접어 마음 한켠 고이 간직하며, 아픔이 우리를 치고 들어와 정신을 잃어갈 때쯤 한 번씩 그때의 기억을 소중히 펼쳐보며 견디고 있다.
가슴 깊이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딸이어서, 나는 감사하다.
마지막일 줄 알았던 여행,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순간들을 다행히 추억하며.
꼭 잡은 손, 절대 놓지 않을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