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를 읽고

병영 독후감 - 좀비가 된 세상에서도, 우린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

by 지오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 올리브와 바다 거북이 사이의 뜬금없는 '각시'라는 학명이 우스워 그 부부가 애정하는 아쿠아리움의 거북이가 됐다. 나중엔 장풍(장수풍뎅이)이란 별명을 지어주는데, 왜인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면 '그린 올리브'라든지 '각시탈'이라든지 학명에 어울리는 별칭을 주었을 것이다.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좀비가 활보하는 세계 속의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그린다. 세 장으로 구성된 천선란 작가의 연작 소설로, 유튜브에 '이번 달의 소설 추천'을 검색하다 알게 됐다. 지난 주말 외출 때 서점에서 가져와, 수도병원 외진 하루 만에 모두 읽어버렸다.


좀비가 된 아내와 장풍이를 태운 쇼핑카트를 밀고 있다. 어정쩡하고 느린 발걸음으로, 어느새 자기가 좀비가 돼버린 지도 잊은 그녀와 장풍이의 대화다.

"저 새가 뭔데?"

"흔히 볼 수 없는 부리 붉은 애. 잘 날고 많이 먹어."

"아니, 종이 뭐냐고, 학이나 두루미 이런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건 우린 몰라. 분류하고 나누는 건 인간만 해. 종을 알아야만 저게 있다는 걸 인정할 거야? 모르면 쟤는 존재하는 게 아닌 거야?'

읽고 보니 그렇다. 종은 인간이 생물 연구를 하거나 발표할 때 편하기 위해 정해놓은 명칭이다. 새로운 종을 발견한 조류학자는 자기 이름을 딴 새로운 학명도 붙인다. 내 이름 '지오'는 부모님이 '밝고 지혜롭게 살라'는 뜻을 붙여주신 이름이다. 이름이 지오가 아니더라도 밝고 지혜롭게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다못해 이름이 없더라도.


첫 번째 연작 소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는 우주선에서 시작된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며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를 두고, 먼 은하계의 새로운 터전을 찾으러 떠난 '은주'와 '묵호'가 있다. 은주는 피와 내장 범벅인 우주선에서 깨어난다. 선원 대부분이 좀비가 되거나 죽었다. 생명 신호가 잡히는 몇 안 되는 존재들 중 하나가 묵호이길 바라며 그를 찾는다. 볼이 뜯겨 나가고, 생기를 모두 잃고 창백해진 묵호는 이상하게도 은주를 물지 않는다. 마치 인간일 때의 기억이 있듯, 그녀를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있듯 달려들지 않는다.


천선란은 기존의 좀비 아포칼립스 설정에 '기억'이라는 변주를 준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가 친구, 연인이나 가족이더라도, 우리는 그를 버리거나 죽여야 한다. 이성적으론 죽여야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른다.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몸이 죽어버린 그런 좀비라면 어떨까? 묵호는 좀비로 변해버린 선장 타일러로부터 부러진 발목을 이끌고 은주를 지키려 한다. 기내의 AI조차 묵호를 좀비로 치부한 채 은주에게 버리라 한다. 하지만 은주는 기어코 행성 카르노에 비상착륙해 묵호를 껴안으면 첫 장이 끝난다.


2장엔 자폐아 딸을 가진 은미가 있다. 홀로 노윤이를 키워야 했던 그녀는 고아원에 딸을 잠시 맡긴 적이 있다. 그곳엔 어린 묵호가 있었다. 훗날 미래엔 우주 좀비가 되는 묵호가 노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은미는 분명 노윤이를 사랑한다. 고아원에 두고 온 노윤이를 생각하며 수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자폐아'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다. 묵호의 말을 들은 은미는 노윤이가 '평범'한 아이든, 자폐아이든, 혹은 좀비이든 그저 내가 사랑하는 딸이라면 아무 상관없다. 그렇게 좀비 세상에서 악착같이 둘이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건 무엇인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설정 뒤에 치밀하게 숨겨둔 세 개의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작가는 두 가지 대비되는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한쪽은 사전적 의미의 인간을, 반대쪽은 그를 초월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AI와 은주, 노윤과 어린 묵호, 아내와 장풍이. 김동욱 병장님은 부모님이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가거나 안전한 곳에 가두어두는 선택을 하겠다고 했다. 치료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면, 그 두 글자에 의지해 사랑하는 사람을, 좀비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게 정말 소중한 외할머니가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쉽사리 쏘겠다고 말하지 못하겠는걸. 상상만 해도 끔찍한걸. 좀비가 되어버린 세상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민하는 내 모습이 더 미울걸.


망설이기 때문에 인간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가? ㅅ,ㅏ,ㄹ,ㅏ,ㅇ 다섯 모양들로 명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연인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왜 하필 묵호, 소녀의 아버지, 아내는 좀비가 되어도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까?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좀비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여러분 옆이 있는 전우를 사랑합시다'라는 말에 곧장 옆자리의 동기를 사랑할 순 없다. 사랑은 어렵고 무겁다. 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외할머니가 늘 내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 수영 수업을 들을 때면 할머니에게 집에 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던 기억, 횡단보도 앞에 손을 꼭 잡고 신호를 기다리던 유치원생 지오, 멀리 유학을 떠난다는 말에 한 달음에 인천공항 마중을 나오셨던 할머니. 그런 고마운 기억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사랑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


사랑하는 외할머니,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한 명 한 명 나열하기 어려운 소중한 친구들과 인연들. 더 큰 쪽이 늘 작은 쪽을 이해하듯,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듯. 우린 사랑을 이해하고, 이미 너무나 완벽하게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으니, 난 좀비가 될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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