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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 May 14. 2019

체육 전교 꼴찌의 반란

내가 클라이밍을 하는 이유

너희 아부지가 보면 까무러치겠다


초등학교 때 체력장(체력 테스트)에 임하고 있던 나를 보고 교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몸치다. 당연히 운알못(운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매년 4월에 열리는 지역 초등학교 육상대회를 위해 응원 연습을 할 때마다 괴로웠다. 뭔 율동을 하라는데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었다. 체육은 또 어찌나 못했는지. 봄과 가을에 열리는 운동회 시즌마다 고통스러웠다. 11월에는 학예회를 하는데 부채춤을 춰야해서 너무 싫었다.



내 키가 10cm만 더 컸으면 지금쯤 메이저리그에 있었을 거야


야구경기를 볼 때마다 아빠가 하는 말이다. 아빠는 스포츠광이고, 실제로 스포츠를 잘하신다. 아빠는 어렸을 적 살던 시골에서 그 시절 가장 먼저 배구/농구 경기를 직관했을뿐 아니라 초등학교때부터 라디오와 TV를 통해 배드민턴, 탁구, 축구, 야구 등 모든 스포츠의 룰을 스스로 익힌 사람이다. 우리 집안 4명의 고모 중 2명이 초, 중학교때 학교 대표로 육상선수 활동을 했다. 남동생도 초등학교 때 육상부였다.


집안이 이정도면 나도 최소 체육 실기 중간 점수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꼴찌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체육 과목 전교꼴찌를 했다(우리 학교는 나름 이 지역 명문고다. 뭐 나름 커트라인 높다ㅋㅋ 그렇다고 꼴찌를 하다니....;; 사실 다른 학교였어도 꼴찌했을 듯) 프로듀스 101도 그렇고, 1등이 있으면 반드시 101등도 있기 마련. 하지만 주변에 전교꼴찌를 경험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건 흔치 않은 일이고, 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고1 2학기 성적표를 받던 날 이후부터 '우리 집안은 다 체육을 잘 하니까 나도 잠재력이 크겠지. 아직 포텐이 터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쭉 운동을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전교꼴찌의 충격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어느 날, 계속되는 야근과 술자리로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큰맘 먹고 헬스장에 찾아 갔다. 헬스장 6개월 등록 시 무료 PT 2회가 서비스로 제공됐다. 깡마른 여자 트레이너가 나에게 와서 이런저런 동작을 시켰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는 동작조차 따라하지 못했다. 무릎도 제대로 구부리지 못했다.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네요


트레이너는 혀를 차며 말했다. 기분이 확 나빴다. 아니 내가 모르는데 어쩌라고!! 운동으로 돈 벌어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냐고!! 그 날 이후로 나는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본의아니게 헬스장 기부천사가 되었다)


서른살, 사회초년생에서 벗어난 나는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동네 1:1 PT숍에 찾아가 20회를 등록했다. 20회가 끝난 후에는 30회를 추가로 등록했다. 그 다음 해에도 PT 30회를 했으니, 지금까지 받은 PT만 80회에 달한다.


PT를 받고나니, 최악의 몸치인 내가 그나마 몸을 좀 쓸 수 있게 됐다. 이제 혼자 스쿼트와 런지를 할 수 있다. 10km 마라톤 2회, 5km 마라톤 1회 출전하기도 했다. 유튜브를 보면서 나홀로 운동도 가능하다. 물론 자세가 완벽하지는 않다. PT 80회 받은 것 치고는 상당히 못한다. 트레이너는 나에게 "어디가서 저한테 PT 받았다고 하지 마세요" 라고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었겠지?

 


보통 클라이밍(인공암벽)을 한다고 하면 운동을 엄청 잘하는줄 안다. 그도 그럴것이, 클라이밍은 익스트림 스포츠 중 하나로 여겨지는 종목이다. 실제로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골프, 볼링, 마라톤, 헬스 등 해볼 것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운동이 클라이밍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남다른 운동신경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만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나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체육 전교 꼴찌 출신의 반란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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