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아픈 밤입니다
글쎄요, 마음이 참 복잡하네요. 제가 오늘 너무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왜 이제껏 몰랐을까, 물어보지 않았을까, 조금씩 시간을 내서 더 깊게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을까. 모든 것이 후회되고 아픕니다.
사실 관심이 있었다면 이렇게 늦진 않았겠죠.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보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 했다면 분명 찾았을 법도 한데, 정말 무지하고 나빴습니다.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무엇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일이었는데 그 많은 시간은 나로 인해 무너졌을 겁니다. 어떡하죠,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들겠어요.
썩어 빠진 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각오를 새겨야 할 때인데 나는 그것도 겁이 납니다. 새롭게 태어난 나는 어설프게 돋아난 마음으로 빚어진 미완성의 인간 밖에 안 될 테니까요. 한 발을 딛기가 왜 이리 어렵습니까. 노련하지 못한 나의 대처가 왜 이리 원망스러울까요. 성숙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되려 이 아픔을 잘 이해하게 된 걸까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나의 첫마디에 두 분의 얼굴이 얼어붙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금세 젖습니다.
말씀을 안 하셨던 건 늘 고단한 몸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허겁지겁 집을 나서는 내가 밟혀서겠죠. 시간이 지나 마음이 누그러지면, 떨지 않고 편하게 아들의 생각을 들을 준비가 될 것이라 믿어서겠죠. 고향에 계속 사셨으면, 익숙한 곳과 풍경 속을 거닐며 쌓인 근심을 조금씩 덜으셨을 텐데, 할머니와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애교를 피우는 손녀를 봐주시느라 감정을 보듬을 여력이 없으셨겠죠. 그런데 그걸 다 알면서 매번 살아내느라 힘들다며 푸념만 했던 나는 당신의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철부지밖에 안 됩니다.
살면서 저를 낳고 키웠던 시간이 가장 행복하셨을까요. 내가 딸을 낳고 키우는 지금의 시간만큼 벅차고, 기쁘셨나요. 다시 자식 된 마음으로 우리가 같이 살았던 시절로 돌아가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두 분의 사랑 밖에 안 보입니다. 나는 그걸 다 받았으면서 이렇게 두 분의 헌신을 요구하며 편하고 좋은 시간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엄마, 아빠. 내가 늦지 않게 말을 걸게요. 우리가 가장 가까웠던 시절로 가서 하고 싶으셨던 말, 묵혀두고 못 하셨던 말, 서럽게 외면받았던 날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나는 부모의 마음으로 두 분께 끝도 없는 존경과 사랑을 담아 앞으로의 시간을 같이 헤쳐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