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겼어야 했던 것들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는, 그리고 넘어서지 못한 장벽은 타인의 시선과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은 앞날의 불안이었다. 몇 달 전, 집에서 일을 붙잡고 야근을 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고, 아내와 딸은 그 소리에 놀랐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온몸에 땀이 나고, 모니터 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 쓸모없고 하나도 의미를 찾을 게 없어 목이 타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해 보려다 탈이 났다. 가족의 생계와 사회적 체면을 지키려다 내가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용솟음쳤다. 내일의 나는 죽음을 이겨내고 산 채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게 될까. 하기 싫은 일과 있기 싫은 공간에 놓여 있는 모순된 상황을 이겨내고 괜찮은 척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몰려든다.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묻는다. 그냥 편하게 마음먹고 직장을 다녀보라고 한다. 잘 알지 않냐, 직장이란 것이 어차피 하기 싫은 일들 투성이고, 회사에 묶여 있는 시간을 벗어나면 별 것 아닌 거라고 다독인다. 아내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여력도 없었다. 끝없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말들과 나쁘게 의도될 것 같은 문장들을 지우고 지워도 말이 새어 나온다. 나의 감정은 분명 아내에 대한 실망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면서, 남들한테 할 법한 소리를 나한테 똑같이 빗대어한 것에 대한 야속함이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생각해 보면, 아내는 직장이 뭐라고 가족들 앞에서 그런 잘못된 행동을 서슴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전한 것이었다.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죽은 채 사는 것만 같은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어.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바랄 힘도 없어. 미안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나는 그 말로 잔인하게 선을 그을 뿐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의 쉼표가 필요했다. 그냥, 그저 누워서 쉬고만 싶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집에서 나가고 싶을 때 외출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그 외에는 아이를 보며 살고 싶었다. 스스로를 못 살게 굴고, 독촉을 받듯 무언가를 꼭 해내야 하는 삶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됨을 잃게 했다.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듯 덤벼들고, 내가 디딘 곳이 전부인 것처럼 사활을 걸고, 누군가의 인정과 평가로만 규정되는 나의 모습은 의미를 잃었고, 웃음을 잃었다. 악착 같이 해내는 삶의 기쁨들이 버텨야만 안도감이 드는 긴장의 날들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일군 성공은 나를 통해 일을 완수해 낸 사람들의 것이었을 뿐, 결코 나의 영광은 아니었다.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하고, 직급을 높여준 걸 감사해할 줄 모르는 철부지라 욕해도 봤지만, 그렇게 속박된 사이 소진된 감정과 침식된 시간은 나를 돌볼 기회도 빼앗았다. 무기력해지는 일상과 게으름을 피우는 마음은 고스란히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이기심으로 번졌다. 지금의 나는 부모, 부부, 조직의 한 사람으로서도 제대로 증명할 만한 것이 없어 머뭇거리는 외톨이다. 딴생각에 잠겨 있거나 지켜보는 사람처럼 가족과 육아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 같다는 아내의 지적은 적확하고, 뼈아프다.
"그때처럼, 억지처럼 축 처진 어깨를 펴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밤낮을 안 가리고 맴돈다." 더 좋아했던 가사는 "모두가 그렇게 살듯이 나에게도 아주 멋진 날개가 있다는 걸 압니다."라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날개가 없다는 걸 잘 안다. 나의 여정은 적막을 향해 저공비행을 하다 고개를 쳐들고 뭍으로, 발 디딜 수 있는 곳으로 몸을 비틀어 가고 있을 뿐이다. 나로 인해 축 쳐진 존재들의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어깨를 펴본다. 파란색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진동에 오만 것들을 털어내며 심해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