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느끼게 되네요.
마흔한 살의 시간이 저물고 있다. 마흔이 되었을 때는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확실히 마흔을 넘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사회에서 가장 찬란하고 활발한 시기에 들어선 사람도 있겠지만, 자칫 회사의 상황과 논리에 따라 퇴사를 권고받는 우선순위에 위치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돌아가기에는 꽤 멀리 왔고, 새로 하기에는 세월마다 갈고닦은 것들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가족의 성숙과 안정의 궤도를 이루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것들이 많고, 젊다고 말하기에도 모호하다. 흔들릴 때마다 지지대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데, 여전히 어리고 기댈 곳을 찾는다. 미숙한 삶의 굴레는 계속되고, 내가 쳐놓은 울타리는 엉성하고 약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늘 찾는 것이 와이프, 엄마, 아빠다. 핸드폰에 고이 모아 놓은 사진첩의 제일 오래된 순서부터 가장 최근 순서까지 하나씩 살핀다. 젊은 날의 얼굴로 웃고 있는 가족들, 하나의 인생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다섯 식구가 될 때까지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나누고 함께 했다. 지나온 역사는 오늘을 있게 했고, 막힌 길목을 뚫어 헤쳐 나가게 한 힘이 되어 주었는데, 단 하루를 살 때마다 잊는다. 현실의 갖가지 일들이 행복을 갉아먹고, 거기에 뒤덮인 감정이 숨구멍을 찾지 못할 때마다 어떠한 순간을 거뜬히 이겨내는 것조차 까마득히 먼 일 같다. 내가 위치하는 지점마다 버틸 곳이 어디인지 찾으려 드는 습관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도 있고, 생존에 적합하게 진화된 탓도 있다.
주변에서 부쩍 말한다. "딸이 예쁘게 잘 크는 모습 오래 지켜봐야지.", "회사에 잘 붙어 있으면서 가족들 잘 일궈야지.", 참 좋은 말이고 진심을 담은 덕담인데, 틀어 보면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것이 인생의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기생한다. 내가 직장에 잘 붙어 있는 것과 가족을 건사하게 하는 것이 일대일의 정비례 관계이고,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될 것이란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현주소가 뼈아픈 사실로 성큼 다가온다. 여러 핑계를 댈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우면서도, 그 시절엔 지금의 소중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없었기에 후회가 되지 않는다. 결국 무엇을 보태거나 덜어냈던 세월들이 균형으로 향하는 궤적을 그려준 것 같다.
나는 이제 비워낼 것들을 찾고 있다. 무섭지만 새롭게 채워야 할 것들을 준비한다. 갈고닦은 것들을 원점으로 돌려 단단하게 다시 쌓으려 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다른 일들로 채워질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옅어진 마음도 다시 고치기로 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려는 행동과 도전이 없이는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와이프와 술을 마시면서, 그동안 서로를 멀리하게 된 이유들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사뭇 진지하기도 했고, 웃기도 하며 다시 처음과 끝을 함께하기로 했던 지난 시절로 돌아갔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인생의 쓴 맛만 다시는 염세적인 사람이었지만, 눈빛에 낭만이 있었고 한 사람에게만 가득한 따스함이 있었다. 와이프와 팔짱을 끼고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우린 언제나 서로에게 유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꽤 중요한 사실이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옆사람의 온기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관심이었다. 찬 기운이 가라앉은 밤거리에 문득 생각난 말을 뱉었다. "자기는 계속 일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하고 싶은 거 해. 나, 집에서 기다릴게. 하고 싶은 거 하고, 돈도 벌려고 애쓰며 나의 이름으로 살아갈게. 대신, 지금보다 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울게."
"퍽이 나. 늦게 자지 말고 씻고 자.", 그래도 와이프는 개운한 듯 웃고 있었다. 더 많이 보고 싶다, 이 웃음을. 그리고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이런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