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런 사회가 있을까
궤도란 이름을 가진 과학 유튜버가 있다. 일상 속에서 과학의 세계와 원리를 발견하여 쉽고 재밌게 전한다. 어렵기만 했던 과학을 친근하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의 설명과 거기에 더해지는 유머는 특별하다. 남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쉽게 전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멋지다. 그런 점에서 궤도는 매력적인 사람이고, 참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궤도가 어느 채널에서 다정한 사람들이 도태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 적이 있다. 바꿔 말하면 아무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무례한 사람들이 좋은 자리, 좋은 조건을 선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리를 꿱꿱 지르거나 막무가내인 사람들의 민원을 먼저 들어주는 사회적 관행. 그것들에 침묵으로 답하고, 그것들이 통하지 않게 만드는 공통의 규칙과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몇 번을 돌려 보아도 맞는 말인데, 그런 세상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기존의 것들에 순응하고 함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과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미미한 자신들의 총합이 그저 단순 합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치 앞에 서로를 보이지 않게 위로할 뿐이다.
다정한 사람들이 세상의 주류가 되고, 그것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되어 서로를 조심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탄생하기를 꿈꾼다.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지고, 나의 인생에서 한 톨의 의미도 없던 일이라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고, 힘이 있기에 마음껏 할 수 있는 체제를 겪으면서 미래의 나는 어느 쪽에 해당하는 인간이 될지, 또 힘이 있는 쪽이 되면 저들과 같은 언행을 하며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상상을 하게 됐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끔찍한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어느 편에 서지 않을 수 있을까 싶지만, 현재는 어느 편에도 물들지 않고 살아가며 다정한 시선과 마음을 지키려 애쓴다.
가끔 친구들과 사석에서 술자리를 하며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모두가 피곤해한다. 그들 중에는 네가 노동법을 전공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늘 예민하게 받아들이니까 답답함이 큰 거라고 말한다. 사실 그 말들이 하나 같이 다 맞다. 나의 주관과 편향대로 각종의 일들을 받아들였고,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일이든 세상의 일이든 어느 것도 단순한 게 없어서, 한 면만 봐서는 진정한 이야기를 알 수가 없고, 사람의 관계와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복잡 미묘한 서사를 갖고 있어서 풀어서 보지 못하면 지레 단정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그걸 몰라서 건방을 떨어댔던 시절을 겪었고, 그걸 알기에 최대한 신중하고 차분하게 일을 전개해 나가는 습관을 키우면서 이제는 원인보다는 결과의 조각들을 모으려 한다. 무엇이 문제였는가는 관심에 두지 않고, 결과적으로 무엇이 문제로 보이는지만 찾으려 한다. 어차피 결과는 원인을 품고 있다는 맹신, 결과로써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원인을 발견하려 애쓰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 이 두 가지 사고관이 강하게 박혀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다정한 사람들이 세상의 주류가 되지 못하게 막는 세력의 편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 무엇을 꿈꾼다거나 소망한다거나 말할 자격이 있나 싶다. 내가 말해왔던, 그리고 지키려 애썼던 다정한 시선과 관심이란 것도 그릇된 맹신과 자기 합리화의 산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