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찾아온 사랑

by 필경

"여보, 인사해."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온 남편이 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누가 왔나 궁금해 현관으로 달려간 나는 이내 깜짝 놀랐다. 새하얀 얼굴에 붉은 뺨, 갈색 옷을 입은 아이가 남편 손에 들려있었다. 세상에. 은은한 향기까지 나다니. 우리의 첫 만남은 기대와 설렘, 약간의 불안감이 뒤섞여 들썩이게 했다. 물을 마신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촉촉하고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작고 사랑스러운 이 아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고민하다 정체성이 깃든 호칭이 좋을 듯해 '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렇게 카이는 우리 집 막내로 함께 살게 됐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가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는지 살며시 다가와 물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응? 왜? 이상한 냄새나?"

"아니, 아주 달콤한 기가 나. 사탕 같아."

"아, 이쪽으로 와봐. 엄마가 소개해줄게."

부엌 한쪽에 위치한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있는 카이를 보자마자 '우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예쁘지? 우리 집 막내 '카이'야. 앞으로 잘 돌봐줘."

"응. 잠시만. 내가 이름표 달아줄게."


한참이 지나고 방에서 나오더니 카이의 옷에 이름표를 붙여줬다. '카이'라는 정성 어린 손 글씨를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한참 동안 카이를 바라보던 둘째가 갑자기 '이 아이는 몇 번째 막내야?'라고 물었다. 그러게, 몇 번째 막내였더라? 다섯 번째쯤 되었던가. 이번에는 기필코 정성을 다해 키우리라. 햇빛과 바람도 쐬어주고 물도 며칠에 한 번씩만 듬뿍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카이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사랑한다 말해줬다. 앞베란다에 앉혀놓고 쑥쑥 크라며 덕담도 건넸다.



한동안 아침저녁으로 카이를 돌보는 나를 지켜보던 둘째의 마음속에 작은 질투심이 생긴 모양이다. 엄마는 카이만 예뻐한다, 나에게는 다정한 말도 안 해준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 모습이 내심 귀여워 그냥 뒀는데 며칠이 지나도 질투가 식을 줄 몰랐다. 아차 싶어 뒤늦게 사과했지만 아이에게서는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막내 타이틀로 9년을 살아온 둘째. 카이에게 자신의 자리와 사랑을 뺏겼다 느꼈는지 두 볼에 서운함이 한가득이다. 아이에게 '내리사랑'을 바란 것이 어쩌면 어른의 관점에서 요구하는 욕심이었을지도. 이후로 둘째 앞에서는 카이를 향한 애정표현을 삼가고 우쭈쭈 칭찬해 주기에 신경 써야만 했다.


그 사이 카이에게 못된 녀석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다정도 병이라고 서툰 나의 사랑에 카이가 병들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기에 목이 마른 줄 알고 물을 듬뿍 주었는데 그게 과했던 모양이다. 뿌리가 습하면 생긴다는 '뿌리파리'가 나타나 카이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깜짝 놀라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퇴치 방법을 검색했다. 뿌리파리는 번식력이 강하다, 살충제를 써야 한다, 박멸이 안 되면 화분을 갈아엎어 분갈이를 해야 한다 등등. 6시간 이상 일광욕하며 바람을 쐬야 하는데 요 며칠 흐린 날씨에 내버려 뒀더니 탈이 나고야 말았다. 이 아이마저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약도 뿌려주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늘진 내 얼굴을 보며 둘째가 슬며시 말을 건넨다.

"엄마 괜찮아? 카이 때문에 신경 쓰여?"

"응. 이번에는 정말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 카이가 아프니까 마음이 씁쓸해."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첫째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카이 건강해지면 많이 사랑해 주겠다고. 그래, 사람도 식물도 가족이 되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거지.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어느새 아이들 마음에도 카이는 '우리 집 막내'로 자라고 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카이는 뿌리파리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충이 성충으로 크기 전에 박멸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속이 타들어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브런치 작가됨을 축하하며 남편이 선물해 준 소중한 나의 카이. 화원에서는 선반에 진열된 여러 카네이션들 중 하나였지만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정카이'가 된 귀염둥이 막내. 자고 일어나면 꽃봉오리가 벌어져 있고 낮 동안 햇빛 듬뿍 받으면 활짝 피어나 미소 짓는 아이. 그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열심히 약을 뿌려주며 사랑한다 말해준다. 나의 카네이션, 카이야! 막내는 오직 너뿐이란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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