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배우 장국영, 중국 공산당 지하요원을 연기하다
이 영화를 잘 못 보면 ‘닥터 베쑨’ 이야기인 줄 안다. 캐나다 출신의 의사로 중국혁명에 뛰어든 베쑨과는 달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는 페인이라는 사람이다. 그가 1930년대 상해의 외국인 조계지를 배경으로 혁명과 반혁명의 중국 현대사를 지켜보며 그 후일담을 적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붉은 혁명’의 열정이라든지, 동아시아 국가 중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아니다. 다분히 멜로물이며, 지극히 통속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1930년대 상해는 여전히 중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곳이었고, 공산혁명분자가 활개를 치던 아지트였고 국민당 비밀요원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쫓고 처형하던 역사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미국인 의사 로버트 페인은 어느 날 밤 뜻밖의 방문을 받게 된다. 츄츄(秋秋)라는 중국 여성이었는데 유창한 영어로 도움을 청한다. 의사는 내키지 않은 방문이었지만 여자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따라나선다. 그를 기다리는 환자는 심한 외상을 입은, 그리고 간질 증세를 보이는 ‘진’이었다. ‘진’은 상해를 배경으로 혁명 활동을 하던 공산분자였고, ‘츄츄’는 그를 돌보는 혁명동지였다. 페인은 이후 이들을 둘러싼 복잡한 중국의 현대사를 지켜보게 된다. 결국은 츄츄의 불행한 가족사와 그들의 비참한 최후까지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딸 ‘진주’를 페인이 키우게 된다. 1949년 인민해방군이 상해를 접수하고, 이제 페인은 그들 부모가 목숨 바쳐 이룬 건국신화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공산 중국이 혁명에 성공하기까지 뿌린 혁명동지의 피와 희생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인 셈이다. 장국영이 공산분자로 출연했다는 것이 의외이며, 이런 영화가 요즘 왜 만들어졌는지도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중국의 ‘자금성영화사’가 만든 대륙 영화임을 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츄츄를 연기한 ‘매정’은 남경 출신의 대륙 배우이다. 장국영 외에 많은 서구 배우들이 출연하고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진다. (배우 장국영은 런던에서 공부한 배우라서 영어를 잘한다)
중국 건국 50주년을 즈음하여 나온 영화이긴 하지만 특별히 훌륭한 작품이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1930년 즈음하여 중국 대륙에서 펼쳐지던 국민당과 공산당의 드라마틱한 세력 대결을 염두에 둔다면 꽤나 흥미진진할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국 상해의 현재 모습이 잠깐 나온다. 상해탄에 우뚝 쏫은 탑이 그 유명한 ‘동방명주’ 방송 송신탑이다.
장국영이 맡은 역할은 공산당원, 정확히는 국민당 시절의 공산당지하당원이다. 이 때문에 영화 제작당시 논란이 좀 있었지만 장국영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단다. “나는 공산당원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른다. 나는 홍콩인으로서,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적으로 접촉한 적이 없다. 나는 진짜 중국인이다. 단지 3개월 만에 공산당원을 연기해 내라고 한다면 감독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1999년 중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타이타닉>이 막 중국에서 개봉되어 흥행 1위를 차지했을 때 자국 영화로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당시 중국내 흥행수익은 2,500만 위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