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법제도, 인민 속으로 들어가다
2007년 서울에서 열린 CJ중국영화제를 통해 상영되는 영화중에 ‘중국학도’들에게 가장 흥미로울 작품은 아마도 [말 등위의 법정](馬背上的法庭)일 것 같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정치제도만큼이나 정제 발전된 사법체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택동의 농민혁명이 성공하여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가 된 이후에도 나름대로 완비된 사법체제를 갖추었다. 그것이 자본주의 물결을 타며 현대화되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장예모 감독의 [귀주 이야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 후 10여 년. 중국은 더욱더 자본주의 체제로 가속 페달을 밟아왔고, 인민의 요구에 따라 법의 세밀화와 개인화를 이루고 있다. 이때에 중국의 산간오지에서는 어떤 범죄가 일어나고 어떤 법률적 구제조치가 이루어지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말 등 위의 법정]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 등 위의 법정]은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서구관객과 만났다. 삼협댐 건설로 수몰지역이 된 고향을 찾아온 중국인의 이야기를 담은 지아장커(賈樟柯) 감독의 [스틸 라이프](三峽好人)가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때 [말 등 위의 법정]은 지평선부문 상(Venice Horizons Award)을 차지했다. (지아장커 감독이 [스틸 라이프]와 동시에 만든 다큐멘터리 [동](洞)은 다큐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작년 베니스영화제는 그야말로 중국영화의 잔치판이었다.) [말 등 위의 법정]은 중국 서남부 산간벽지, 오지 마을의 사법체제를 다룬다. 중국에도 물론 삼심제도가 이다. 중국인민들은 현급 성급, 최고법원 등을 거치며 법의 공평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런데 아직도 다큐멘터리 채널의 ‘오지탐험’에나 등장할 만큼 오지에선 어떤 사법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영화는 한 중년여성 (楊阿姨)이 ‘하강’(下崗)을 통보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국의 정책변경으로 양 아줌마는 법원 서기관 자리를 그만둬야하는 것이다. 양아줌마는 주인공인 라오펑(老馮)과 함께 마지막 ‘마상법정’길에 오른다. ‘마상법정’이란 마치 서부시대 미국의 순회법원판사 같은 존재이다. 중국의 마상법정은 그 험난한 여정만큼 지극히도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라오펑은 말안장 위에 ‘중국법원’을 상징하는 휘장을 싣고는 산 넘고 물 건너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오지마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법의 판단이 필요한 인민들의 소리를 공평무사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번 길에는 하강 당하는 라오양과 곧 법관이 될 신출내기 대학생 아뤄(阿洛)가 동행한다. 영화는 곧바로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송사를 보여준다. 동서 간에 이루어지는 한 집안의 재산분쟁이다. 동서 간에 작은 단지(옹기)를 하나 두고 서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라오양이 나서서 어르고 달래도 보지만 요지부동. 마침내 뒷짐 지고 보고만 있던 라오펑이 나선다. 옹기를 쳐들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것이다. 산산조각 나는 옹기. 라오펑은 자기 지갑에서 5元(우리 돈으로 600원 정도)을 꺼내어서는 공평하게 반씩 나눠가지라고 판결한다. 라오펑의 판결은 줄곧 이렇다. 돼지 한 마리가 남의 짐 조상 무덤을 파헤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법관은 그 돼지를 벌금으로 건네주라고 판결한다. 네댓 번의 판결이 이루어지지만 하나같이 생활밀착형 분쟁이고 하나같이 라오펑의 자의적 판단으로 종결된다. 그렇다고 결코 솔로몬의 지혜가 느껴지진 않는 그런 해결책이다. 신출내기 아뤄에게는 노법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법적 분쟁의 구성요소도 갖추지 못한 사안이거나 그 어떤 법조문에도 명쾌한 해결책이 없을 것 같은 난감한 사안, 혹은 어느 일방의 위계(僞計) 분명한 사안을 두고 라오펑 법관이 내리는 두루뭉술한 판정이 못 마땅하다. 하지만 라오펑의 경험적, 현지상황에 맞춘 최선의 판결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라오펑 판사와 양 아줌마의 관계이다. 오랫동안 판사-서기관으로 호흡을 맞춘 법관 같기도 하고 혹은 내연의 관계로도 보인다. 언제나 늙은 판사의 옷을 깔끔하게 다려주고 챙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둘은 헤어진다. 오래된 부부처럼 행동하던 여자는 “내가 생각나면 편지 주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이 여자의 출신을 알면 조금 이해된다. 여자는 모수(摩梭)족 출신이다. 30여 년 전 중국이 개혁개방노선에 들어서면서 소수민족으로서 당에 의해 발탁되어 법원에서 근무하게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법관은 대졸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강 당하게 된 것이다.
모수 족은 운남성 려강 인근에 산재한 소수민족이다. 이 민족은 정말 흥미로운 종족이다. 이미 여러 차례 다큐나 책으로 소개된 특이한 풍습을 가진 민족이다. 이 종족에게는 결혼이란 제도가 없다. 아니 결혼식이란 인위적인 절차가 없다. 13살 이상이 되면 남녀가 서로의 상대(성적 대상)를 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모계사회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한밤에 여자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어가서는 하룻밤을 지낸다. 마치 부부처럼. 그리고 날이 밝으면 남자는 몰래 빠져나와 엄마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관계를 ‘아쭈’라고 부르며 남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시들해지면 상대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생기더라도 아빠가 누군지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종족에게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중국이 공산화된 뒤 이런 악풍(?)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모계사회의 전통을 유지되고 있고 여전히 대다수 모수족은 아쭈라는 풍습을 실천하고 있다. 양 아줌마가 바로 바로 모수족이다.
영화에는 모수족 외에 이족도 보여준다. 각기 특이한 미풍양속/악습을 가진 이들 소수민족에게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분쟁을 근현대화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법전으로 일률적으로 판시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말 등 위의 법정]은 중국의 열악한 사법제도를 고발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그렇다고 단 한명의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위험한 길을 마다않는 공복의 자세를 찬미하는 주선율 영화도 아니다. 보고 있노라면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저 한 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런 모습을 지닌 저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말위의 법정]의 류걸(劉杰 ,류지에) 감독의 영화사랑은 유별나다. 부모가 모두 대학교수였지만 문혁시절 농촌으로 하방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고교 졸업 후 미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영화 <황토지>의 풍광에 반해 바로 북경전영학원 촬영학과에 진학한다. 그가 촬영감독을 맡았던 작품에는 왕사오슈아이 감독의 베를린 수상작 [북경자전거]가 있다. 이 영화 몇몇 장면에서는 마치 후효현 영화 같은 롱테이크 미학을 엿볼 수 있다.
라오펑 역을 맡은 배우는 이보전(李保田)이다. 그 외 출연진은 모두 비전문배우들이다. 모수족 등이 사용하는 지역사투리(방언)도 들을 수 있는 영화이다. 촬영은 주로 모수족 거주지는 운남성 영양현(寧蒗縣)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재 12개 소수민족 21만 명 정도가 이 일대에 산포해 있다고 한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