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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28. 2020

[정무문] 이소룡, 분노의 주먹

이소룡, 일본을 두들겨 패다

정무문 로우예 감독 精武門 Fist of Fury 1972

불세출의 쿵푸스타 이소룡이 남긴 액션영화는 모두 4편이다.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그리고 <사망유희>. 제목만 보아도 왠지 이소룡의 아우라가 남겨지는 것 같다. 물론 이소룡은 이들 영화 말고도 있다. 아역배우로 출연한 작품이 있고, 미국에서 TV드라마도 찍었었다. 이소룡이 한참 인기를 구가할 때, 불꽃같은 삶을 살 때 만든 이 몇 편의 영화들은 이제 거의 컬트에 오른 작품들이다. 서구에서는 아직도 부르스 리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의 작품과 포스터는 여전히 인기거래 품목이다.


이소룡의 아버지는 광동오페라 단원이었단다. 1940년, 그의 아버지가 소속된 극단이 미국에서 공연할 때 샌프란시코의 차이나타운에서 그가 태어났다. 그리고 어린 소룡이는 홍콩 구룡반도에서 쌈박질하며 거칠게 자란 모양이었다. 말썽을 계속 피우자 아버지는 소룡이(본명은 李振藩이다!)를 미국에 보내버렸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미국에서 자란 이소룡은 미국에서 쿵후도장을 세워 미국인에게 쿵후를 가르쳤다. 마치 우리나라 최영의가 태권도를 가르친 것처럼 말이다. 그의 쿵후학교 제자로는 스티브 맥퀸, 리 마빈 등의 헐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있다. 


미국에서 액션 코치로 명성을 쌓던 그는 미국 텔레비전 프로인 <그린 호넷>에 나와 조금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린 호넷'은 마스크 써고 악을 응징하는 영웅이었고, 이소룡은 그린 호넷의 동료 'Kato'로 출연하여 쿵후를 선보였다. 이 프로가 홍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레이몬드 쵸(鄒文懷)가 그를 홍콩으로 다시 부른 것이다. 1971년, 그때 추문회는 그때 쇼브러더스를 나와 골든 하베스트를 세우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홍콩에서의 첫 영화작품의 촬영은 태국에서 있었고, 영어제목은 <The Big Boss>였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 소개될 때의 제목은 <Fists of Fury 분노의 주먹>였다. 제목은 많지만 홍콩 개봉제목이 바로 <당산대형>이었다. 이 영화가 1972년 홍콩에서 개봉되고 나서는 발칵 뒤집어졌다. 개봉 3주 만에 350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이며 그때까지의 흥행기록을 깬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이소룡은 부동의 슈퍼스타, 전설이 되었던 것이다. <당산대형> 이후 그는 죽기 직전까지 그의 대표작을 쏟아놓은 것이다. <정무문>도 그러한 영화이다.


<정무문>의 인기는 이후 수차례 리메이크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성룡의 <정무문>, 이연걸의 <신정무문(혹은 정무영웅)>, 주성치의 코미디버전 <신정무문>으로 요즘 영화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외지에서 공부하던 진진(陳眞)이 상해로 급히 돌아온다. 그의 무술학교 사부가 급사한 것이다. 그 무술학교가 바로 '정무도장'이다. 이 정무문파를 없애려는 세력이 바로 홍구(虹口)무술학교의 일본인 세력이다. 시대적 배경은 상해가 외국에게 조차지로 빼앗긴 시절이다. 이소룡은 사부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곤 홍구-일본인 스즈키가 운영하는-의 음모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을 알고는 복수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 국제 정세는 상해 내에서의 중국인의 자유와 주권은 철저히 억압받던 때였다. 이소룡은 혼자서 분연히 홍구의 일본 세력을 무찌른다. 그렇게 사부의 복수를 하고는 입장이 난처해진 중국인 수사관에게 자수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영화가 왜 요즘도 여전히 재미있게 찾아질까. 그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이소룡의 매력이다. 이 더벅머리 청년은 아주 간단단순심플하게 인생을 산다. 그리고 동물적 육감에 의해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한다. 


 '사부가 죽었다' '암살당했다' 그럼? "복수하자!"이다. 그에겐 애국이니 애족이니, 조차지니 하는 것엔 무감각하다. 어쩜 무지한 것인지 모른다. 그는 혼자서 호기롭게 일본인 도장을 찾아가서는 그곳을 쑥밭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럼 일본인 입장에선 그걸 빌미로 정무도장을 폐쇄시키려고 달려든다. 이소룡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이 영화감상의 핵심이다.


이 영화에서 이소룡은 일본 패거리를 때려누이고 중국인의 기개를 드높인다. 그런 통쾌한 액션이 보는 재미와 쾌감을 전한다. 

이소룡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끼오오."괴성을 지르며 나쁜 놈을 두들겨 팬다. 자신의 가슴팍에 긁힌 피를 보면 "오이요호.." 하며 쌍절곤을 멋지게 휘두른다. 사실, 이 영화의 잔재미는 이소룡이 괴성 지르는 것만 아니라 변장했을 때도 멋있다. 아니 재미있다. 신문팔이 노인과, 꺼벙한 전화국수리공으로 분장했을 때이다. 


중국이 외세에 억압받을 때 몸뚱아리 하나로 일본 악당을 두들겨 패는 활극은 100년 동안 팬들의 환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진진은 가공의 인물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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