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환 Oct 28. 2020

[고령가소년살인사건] 소년, 소녀를 죽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牯嶺街少年殺人事件 A Brighter Summer Day,1991)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불행한 근현대사를 갖고 있다. 모택동의 공산당에게 대륙을 넘겨준 뒤 국민당 세력은 일거에 섬으로 내몰린다. 그 때 대만으로 넘어온 사람은 수백 만에 이른다. 작은 섬나라 대만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허우샤오센 감독의 <비정성시>는 대만의 탄생 시기의 비극을 다루었다면 양덕창 감독의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은 흔들리는 대만사회를 필름에 기록한다. 


양덕창 감독의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은 1991년 개봉되었다. 개봉당시에는 3시간 길이였고, 127분 버전도 유통되었다. 2007년 양덕창 감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완전한 판본이 극장에 내걸렸다. 영화는 1959년의 대만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샤오쓰(장진) 가족은 1949년 상하이서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실향인이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학교선생님이다. 급하게 넘어오느라 서류를 챙기지 못한 어머니는 매년 임용계약에 신경이 쓰인다. 이들은 타이베이의 일본식 주택에서 고만고만하게 자란다. 샤오쓰(넷째)가  상급학교 진학시험에서 실패한 뒤 어쩔 수 없이 1년을 야간부에 다녀야하는 것이 집안의 문제라면 문제. 샤오스가 그렇게 진학한 건중(建中) 야간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대만사회의 압축판이다.


 학교의 문제아들은 자신들의 따라 어울리는 파벌이 정해져 있다. ‘소공원파’와 ‘217파’이다. 이들은 샤오밍(양정이)이라는 예쁘장한 여자애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더니 결국 칼부림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문제의 발단이 된 샤오밍은 샤오쓰의 속마음도 몰라주고 문제를 확대시킨다. 결국 샤오쓰는 한밤에 단도를 품은 채 샤오밍을 만나 읍소해본다, 하지만,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샤오밍의 말에 격분한다.


 영화는 대만에서 실제 발생했던 청소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 사건은 이렇다. 1961년 6월 15일 밤, 고령가에서 동군복(童軍服-군복스타일의 학생복)을 입은 여학생이 살해되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급하게 현장에 달려가니 소년 하나가 죽은 여자애를 안고 울고 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절명한 상태. 죽은 소녀는 15살 류민(劉敏, 산동성출신)이었고, 소년은 16살 모무(茅武,절강성)였다. 모무는 건중을 퇴학당한 소년이었다. 소년의 진술에 따르면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여자애가 문란한 교우관계를 계속 이어가자, 으르고 달랬지만 결국 홧김에 수차례 칼로 찔러 죽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대만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망한 류민의 아버지가 많이 알려진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대륙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명운을 건 싸움이 몇 년간 이어졌다. 유명한 3대전역 증 하나인 서방전투(徐蚌會戰)에서 국민당군은 공산군에 대패한다. 이 때 통신기밀을 보호하다가 순국한 유택온(劉澤溫) 통신관이 죽은 소녀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처와 어린 딸은 대만에 와서 힘겹게 살아가던 중 딸이 그렇게 죽은 것이다. 딸의 비명횡사 소식을 접한 어머니(陳慶華)는 충격에 금반지를 삼켜 자살을 시도한다. 이 이야기도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어쨌든 소년은 최종심에서 10년형을 받는다. 


이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은 당시 ‘건중학생’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모무’는 퇴학생이었다. 또 ‘건중’ 재학생이 일으킨 유사한 사건도 함께 다뤄졌다. 실제 당시 대만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이들 학생의 파벌문제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국민당 세력(정치인, 지주, 군인 등등)은 중국 각지 출신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의 출신성분, 출신지역별로 세력,당파,조직을 만들어 패싸움을 벌인 것이다. 게다가 대만 본토 세력까지 뒤섞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세력 다툼은 대만사회를 병적으로 분열시킨다. ⓒ박재환


이전 24화 [반교:디텐션] 비정대만 非情臺灣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