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린 Dec 05. 2022

블로그, 고독한 의미부여가 만들어낸 창작물

<Insight>

<블로그를 하는 이유>

- 나만이 가진 색깔과 감성을 담은 생각들로 채워 넣은 '나만의' 콘텐츠는 <과거 - 현재 - 미래>를 쫙 펼쳐 볼 수 있는 것

- '나'의 콘텐츠로 차별화된 재능을 얻을 수 있는 것

-  우열의 관점인 스펙과는 달리, 콘텐츠는 '한 사람' 성향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 온라인 세상에 펼친 나만의 잡지이며, 방송국이 되는 것

- 넓은 사람, 넓은 세상과 깊이 있는 연결이 가능한 것

- SNS는 유통에 특화되어 있다면, 블로그는 콘텐츠에 특화되어 있는 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도서명 : 블로그 마케팅에 모든 것
저자명 : 이태화
창작의 이유는

"누군가 한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요."
"거기에 의미는 나중에 담는 편이에요."

- 일상 튠 작가 '슌' 인터뷰 中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도서명 : 업사이클링
저자명 : 드로우 앤드류





글을 쓰는 것에는 3단계가 있다. 첫째는 관찰이다. 둘째는 발견, 셋째는 확장이다. 이 말은 <카피라이터 정철>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다. 관찰한 것을 확장할 때에 필요한 소스가 있는데, 그게 의미부여 같다. 나에게는 이 말이 이렇게 와닿았다.

관찰한 것은 곧 의미부여를 통해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때의 의미부여는 공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의미부여라는 말에는 양면성 의미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사실, 나에게는 의미부여가 먼저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왔던 단어다. 누군가 나에게 친절을 베푼 것에, 호감 있는 것 아니냐는 철없던 시절의 질문은 친구로부터 이렇게 돌아오기도 했다. "넌 너무 의미부여를 심하게 해. 그냥 그 행동만 보면 되는데, 거기에 의미를 더하는 경향이 있어." 친구의 말에 곧바로 동의가 되었었다. 나는 그런 편이었다. 드라마 배우인 듯 일상에서 혼잣말을 일삼았으며, 무언가를 느끼거나 보거나 들었을 때의 충격이 좋았다. 그 충격의 이유는 대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무언가에 나의 의미부여를 끼얹었기 때문이다. 서문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확장'이란 말에 '의미부여'와 '공감'이라는 요소를 끼얹었듯이 말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이 뻔한 말이 아직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이 문구의 의미로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역할극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라는 역할, 자식이라는 역할, 감독이라는 역할, 창작자라는 역할 등 나의 직업의 역할과 인간관계로서의 역할이 가져다주는 무언가의 수갑이 자유로워지려는 나의 본능을 제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왜 요즘은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급격히 많아진 것일까.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왜 생겨난 것일까. 리서치를 한다면 깊게 사유된 글들이 또다시 블로그를 통해, 기사를 통해, SNS를 통해 나와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해본다.

한 번쯤, 그 역할극을 뛰어넘어 나를 바라보고 나를 먼저 챙기며 살아가고 싶었던 마음의 반작용.      


이 마음들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본문의 말처럼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기에, 그것은 우리의 본능이다. 그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이 콘텐츠 소비자였던 게 아닐까. 그 마음을 좀 더 빨리 표출한 사람이 콘텐츠 생산자였던 것 아닐까. 하지만, 모두가 콘텐츠 생산자가 되었다고 해서, 잘되기만 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핵심은 '의미부여의 대상과, 의미 부여된 메시지의 공감'의 차이라고 느낀다.





창작자들은 어느 분야 관계없이 늘 고심하며, 사색하며, 자신이 만족할 때에 작품을 내놓는다. 타깃이 누구이든,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에서 부합할 때 만족감을 얻는다. 그런데, 내가 음악이 아닌 글을 써보니 알 것 같다. 모든 창작의 끝은 '의미부여'를 통해 출력된다는 사실이다. 이 의미부여는 확실한 타깃의 소비자를 보며 바운더리는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 최종적인 의미부여는 '창작자'만이 할 수 있다. '창작물'은 창작자 생각의 시작과 끝이 연결된 집합체이다. 그 창작자가 공감하지 못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면, 자연스레 선택받지 못하는 작품이 된다. 머리가 띵할 정도의 의미부여가 이루어진다면 소비자뿐만 아닌, 팬덤이 생길 것이다.


브랜드 가치가 명확한 블로그가 모두 공감받는 것은 아니다. 단, 공감받는 모든 블로그는 브랜드 가치가 명확하다.

즉, 블로그를 생산하는 창작자는 그 색을 칠함에 있어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올 생각도 함께 지녀야 한다. 키워드 및 트래픽 분석 이전에, 나의 매거진이 애초에 '공감이 가능한 의미부여'가 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감이 되며, 가독성이 뛰어나며, 브랜딩이 잘 된 콘텐츠는 자동적으로 인식된다. 알아서 '세일즈 퍼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는 창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브런치'는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인 블로그는 책을 만들어내는 기술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하나의 웹 사이트로만 보았었다.(광고 배너가 많은 것도 한 몫했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블로그는 하나의 작품이고, 창작이다. 블로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관심사를 나누고, 글의 주제를 관찰, 선별하며,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 발견, 그것을 확장시키는 과정 속에 혈안이 되어 의미를 더하고, 공감 요소까지 찾아내며 풀어내는 것은 작곡과 다를 게 없다.


개인의 '의미부여'가 매끄러워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인사이트와 다양한 사고, 결정적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독서라고 전하고 싶다. 독서는 사고 확장을 길러줌과 동시에, 작가의 의미부여 방식도 습득할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긍정적 의미부여는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 그 감정을 느끼며, 작가와 독자는 같이 커가는 것 같다. 나는 음악도, 필력도, 그런 창작자가 되어가면 좋겠다.


이 글을 집필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든다. '공감 대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는데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민망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블로그는 한 사람의 고독한 의미부여가 만들어낸 창작물이라 느끼며 안심해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보다는 이성에 끌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