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1991년

녹두꽃

by 임세환

<김광석과 그날들>에 첫번째 글을 어떤 노래로 채울 지 고민이었다. 어제까지 들었던 노래들을 하나하나씩 다시 들어보았다. 어느 한 노래도 밀리지 않는다. 이 가을 그의 목소리와 그가 부른 노래말이 어우러져 계절을 깊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마지막 그날.

1996년 1월 6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강원도 양구의 혹한속에서 군인들에게 주말은 둘중 하나다. 눈 치우기와 휴식

그해 2월 22일이 만기전역이었다.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의 하루하루는 짧고도 길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제대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하자마자 10일이 채 안되어 복학인지라 임용시험을 치루는 4학년이 되는 93학번 동기들에게서 2학년 책을 받아 한장한장 미리 보고 있었다.


1996년 전역을 앞둔 군대 행정반의 최고참에게 중대장도, 행정보급관도, 소대장들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후임으로 결정한 부사수의 일을 체계잡아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하는 일은 행정반이 아닌 누구도 오지 않는 창고에 소히 짱박여 책과 라디오를 듣는일이 다였다.


그날 즐겨듣던 라디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만 나왔다.

그를 추모하는 마음들이 이어진 것이다. 한 가수와의 이별이 이렇게 오랜동안 기억이 남는 건 그의 노래와 삶이 노래로서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서 삶을 배우고, 속상함을 달래고, 힘을 얻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33세, 한 점 불꽃처럼 타오른 그의 삶과 노래를 앞으로 기억해보려한다.




그와의 첫 만남은 1991년, 고등학교2학년때다.

서울 대신고등학교 점심시간에는 교내음악방송이 나온다. 방송반 친구들이 그 당시에 유행하던 가요와 팝송을 골고루 섞고 학생들의 사연을 받아 방송을 했었다. 6월 어느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민중가요 가수의 노래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흘러나왔다. 그 방송이후 방송반아이들은 담당 선생님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고 했다. 어디 싸가지없이 반정부적인 노래를 버젓이 틀 수 있냐며, 야구방망이로 내려쳤으리라. 그 당시에는 맞더라도 죽지않을 정도로만, 부러지지 않을 정도만 맞으면 툭툭 떨고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그 점심시간에 처음 들은 <녹두꽃>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김지하시인의 시에 가사를 입힌 녹두꽃이다.

1987년 공연중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에서는 다른가수가 불렀고 그전엔 김광석이 불렀다. 흔히 알고 있는 동물원의 김광석에 앞서, 1000번이상의 노래공연을 한 학전 소극장의 김광석에 앞서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김광석이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차분하면서도 힘차고 강렬하게 부른다. 노래를 마치고나면 수줍은 청년이다. 어떻게 저런 우렁찬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지는 그때도 지금도 의문이다.

20대 초반 앳띤 광석이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렬한 첫만남.

김광석은 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강렬했다. 그 강렬함이 채 10년이 되지 않아 멈춰 버리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아닌 40년 넘어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으리라고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도 출근길에서 김광석을 만난다. 올해 가을이 더 깊어 질 듯 하다.


녹두꽃

빈 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소리 사라져 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잘리어 굳고 굳은 벽 속에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이 타네 별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려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득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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