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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Dec 04. 2020

전태일신문을 펼치며

감사합니다

11월15일 한장의 사진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이은탁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옮겨왔습니다.


1989년 이후 매년 11월 13일을 전후한 토요일에는 전국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립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집회가 개최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위 사진과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청소노동자 입장에서는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일 겁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원망스럽고 사람들이 밝고 지나간 낙엽들은 더더욱 청소하기 곤란하겠죠. 그러나 사진 속 청소노동자는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시위행렬에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수고하십니다" 이은탁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그 순간의 찰나를 윤성희님이 포착해 주셨네요. 사진밖 윤성희 기자의 따뜻한 연대의 마음도 고이 담겨져 있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때론 구구절절한 구호보다도 이런 사진 한장과 노래 한 구절이 삶에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사진 속에는 남아 있습니다.


길가 한쪽편에 서 있는 공권력의 모습은 이 사진 속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가을날 서로를 향한 일하는 사람들, 현재의 전태일들이 주인공이고 가슴 뭉끌히 셔터를 누린 보이지 않은 작가님이 주인공입니다.



"10부 보내드리겠습니다.주소알려주세요"


이은탁님이 전태일열사 50주기를 맞아 신문을 배달해 주시겠다고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계셔서 소액으로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읽을 수가 없어서 1부만 부탁드렸는데 10부를 보내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부 읽고 다른 9분들에게 이어달라는 당부일 것 같아 감사히 받았습니다.


오늘 출근길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떄 가판대에서 <한겨레신문>을 사 들고 조심조심 읽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밑줄을 긋고 초록색 펜으로 메모도 해가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는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따뜻해지고 절망하고 분노가 치밀다가 다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16페이지 모두 밑줄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문속 하림의 기사를 보고 <그 쇳물 쓰지마라>를 찾아 들어보았습니다. 가수 하림은 10년전 당진에서 1600도 쇳물에 빠져 사망한 죽음을 위로한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마라>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불러주었습니다.


 "법안을 심사하는 위원회에서 노래를 한번 부르고 심사를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수의 절규가 느껴졌습니다.


신문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익숙한 단어입니다. 저희 엄마아버지도 집에서 가방공장을 하셨거든요. 오롯이 두분이서요. 두분이서 하시니 사업자등록이니 뭐니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어릴 적 집에 단속나온 구청 공무원도 옥탑을 개조해 소규모 공장을 하고 있던 엄마아버지를 보고 그냥 돌아가신 적도 있었으니까요. 창신동 봉제공장의 노동자기사에서 아버지의 미싱을 봅니다. <시다>,<시야개(마무리손질)>, <타이밍(각성제, 잠깨는 약)> 등 어릴 적 보고들었던 단어들이 겹쳐집니다. 시절은 변하였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고 뒷걸음질 하고 있었습니다.


<전태일평전>이 나오게 된 이야기, 32부작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기사는 현실과 드라마의 괴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의 가상대화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마흔한살에 아들을 잃고 41년을 더 사시다 가신 어머니는 그 41년동안 250번을 국가공권력 잡혀가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50년전 제가 낸 (작은)구멍이 다시 좁아져만 가네요"라는 열사의 (가상의)말이 인쇄된 12페이지를 봅니다.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죽는 건 태일이 하나로 족해. 이년들아. 살아서 싸워"

옥상 농성장 옆 사측의 CCTV 쇠기둥 끝에 매어 둔 올가미를 찾아 든 어머니는 칼을 찾아들고 단숨에 달려가 올가미를 쓱쓱 베어버렸다고 해요. 어머님의 말과 실천이 옮겨진 13페이지 <이소선에서 김미숙(김용균의 어머님)>을 봅니다.  "아...... " 말을 이을 수 없네요.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교수님이 편집위원장 명의로 쓰신 칼럼 <전태일을 생각하며>는 심장을 파고들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 합니다.  


1970년 11월 13일 청년 홍세화와 청년 전태일은 비슷한 연배였고 몸도 가까이 있었습니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과 동숭동 대학로의 물리적 거리는 지척이었습니다. 홍세화교수님은 동년배 청년의 죽음앞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왜 청년노동자를 삶의 벼랑끝으로 몰고 가는 지 알고 싶었고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한데서 물질적 무기를,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정신적 무기를(마르크스) 발견하는" 노학연대의 여정을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과 함께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며 산화한 그의 불꽃은 젊은 가슴들을 타오르게 한 프로메테우스의 불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도 노동존중사회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고? 하지만 분명히 하자. 노동이 실제로 존중받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제기해야 하지만, 노동이 존중받는다고 할때 노동은 객체이지 주체가 아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노동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자본과 노동계급간 세력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대부분이 몸은 노동자이지만 의식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 있다.

"존재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별화된 개인을 구성할 뿐이고, 그들의 존재조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 계급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단순명료한 이유로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한다" 오늘 한국 노동자 대부분의 모습이 마르크스의 말 그대로 아닌가

그람시가 강조한 문화적 헤게모니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를 간단히 왜곡시킨다. 그에 따르면 산업사회는 노동자들의 정신 속에 '가짜의식'을 주입할 목적을 가진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을 갖고 있다.(.....) 사람들의 감정이입도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한다. 전태일의 풀빵이 상징하는 연대정신은 노동과 진보의 중요한 덕목이다. 계급의식이 없다면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정신이라도 기대해야 하는데 그조차 상층에로의 일방으로만 이뤄진다. "우리가 김용균이다"와 "우리가 조국이다"를 비교해보라.


노교수의 울림이 차라리 호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전태일의 풀빵이 상징하는 연대정신은 노동과 진보의 중요한 덕목이다. 계급의식이 없다면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정신이라도 기대해야 하는데 그조차 상층에로의 일방으로만 이뤄진다. "우리가 김용균이다"와 "우리가 조국이다"를 비교해보라.


아.......


지난해 9월부터 폐렴으로 투병중인 백기완선생님이 전태일열사 50년을 맞아 <전태일신문>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날때마다 한 획씩 긋기 시작해 보름만에 쓴 일곱글자 <노동해방> 과 <백기완>은 더 먹먹합니다.


신문을 정말 이렇게 꼼꼼히 읽었던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제일 마지막장에 다다랐을 땐 절망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소식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전태일50년,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의 제작위원을 찾는다는 광고였습니다. 1970년대의 전태일을 기억하기 위해 2020년 1970명의 제작위원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태일거리에 있는 현판입니다. 날이 풀리면 서현재현이와 함께 아빠이름을 찾아보러 가겠습니다.


전태일거리를 조성할 때 참여했던 현판입니다. 이제 그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고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서현이와 재현이에게 아빠도 이 영화 만들때 함께 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 교수님이 이야기 하듯이 계급의식이 없다면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의식이라도 가져보라는 훈계에 답을 해야겠습니다. 송구합니다. 고맙습니다. 일깨워주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신문을 보내주신 이은탁님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10부 중 9부는 친구에게 후배에게 잘 배달하겠습니다. 늘 그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을 재구성한 기사를 첨부하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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