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전쯤부터 발바닥에 무엇인가가 생겼습니다.
"뭐 대수겠어 싶어" 가만히 두니 그 주위가 굳어지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걸어서 생긴 걸까 싶어 자기 전에 발마사지를 하고 땅콩볼로 지압도 해보았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발바닥이 아픈 건 발바닥으로 내려가는 발목부위가 피곤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발목마사지를 같이 해보면 좋다고 합니다. 아. 이거구나 싶어 열심히 마사지를 했습니다.
매일 밤 피곤한 어깨는 주물러주지도 않으면서 마사지건으로 발과 발목을 마사지 하는 저를 보고 아내가 이야기합니다.
"어디가 그렇게 아픈데..."
"발바닥. 이거 마사지해서 풀어주고 발목도 풀어주면 좋데. 시원한 건 같기도 하고...."
"어디 봐봐"
"자기야. 이거 티눈이야! 약국가서 티눈밴드 사가지고 몇번 붙이면 돼. 진작 이야기 하지. 빨랑 그만 하고 자"
"헉"
티눈이랍니다. 지금껏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티눈. 다음날 약국에 들러 티눈밴드를 사서 붙였습니다. 1세트에 6개가 있는데 3일째 될 때부터 효과가 있었습니다. 티눈이 빠져나간 것 같았고 티눈 부위 굳은 살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여보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아닐 걸, 남은 거 계속 붙이고 확실하게 빠져나가는 것 보지 않으면 아직 있는거야. 조금 더 붙여봐"
"그래,고마워"
나머지 세개 더 붙이고 1세트를 더 구매해 1개를 더 붙인 이후에야 그만 붙여도 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편하네요.
티눈이 있는 채로 걸어다니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왼쪽으로만 힘을 주어 걷다보니 자세도 불량해지고 온전히 땅을 디디고 걸을 수 없어 활동량이 줄었거든요. 그러다 오른쪽 발바닥에 힘을 주는 경우엔 찌릿한 통증이 온 몸으로 전달되어 식은 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쌓였거든요.
내 몸에 생긴 작은 티눈 하나가 내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지 2달이라는 시간. 참 힘들었습니다. 치료를 하고 이제는 온전히 걸을 수 있습니다. 너무 편합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힘을 주어도 통증이 없으니 자칫 흔들리는 경우라도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활동량이 늘어나서 걸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면 그전보다도 조금 더 걸었습니다. 많이 걷게 되니 소화도 잘 되고 마음도 편해졌네요.
나코리님을 처음 만난 건 작년 1월 5일이었습니다. 두번째 뇌, 생산성도구 강의장에서 뵈었었네요. 그날 이후부터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자꾸 처음부터 형님이라고 하니까요ㅜㅜ 저 뮤지컬배우도 다짜고짜 형님.
아놔~ 철없이 나이만 먹었는데 멋진이들과 함께하니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침시간 혼자 가봤던 <테헤란로커피클럽>의 강연에도 "형님가면 나도 갈래, 같이 갑시다" 며 오겠다고 합니다. 설마 말만 그러겠지했는데 오시더라구요. 두손두발 다 들었습니다.
만난지 60일도 채 되지않아 치맥파티를 하자고 합니다.
헐... 술끊은지 100일정도 되었을겁니다.
"나 술 끊었어요"
(지금은 오늘 날짜로치면 겨우 719일이 되네요. 1000일이 될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형님, 치맥은 메인이 아니고요. 사람책 강연을 해보죠. 우리들 이야기 우리들이 판을 함 만들어봐요"
헐.. 그래.
"나코리가 하면 무조건 합니다. 콜!!"
그렇게 첫번째 사람책강연에 타마님, 아름쌤 등 몇 분과 사람책수다와 치맥파티를 했습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반성하며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했네요. 마흔 중반을 넘어 정신차려보니 내가 없는 삶을 살고있어서 나다운 삶을 살아보려했어요. 훌륭한 동생, 형스런 듬직한 동생이 밀어붙이니 억지로 해냈고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 이었습니다
출근전 선릉역에서 모여 비행기모드독서모임도 하고, 온라인상에서 오프라인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같이 했습니다. 아마 2019년 1월 5일 나코리를 만나러 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불가능했을겁니다.
그러던 작년 6월 30일, 전날 스몰스텝 정모에 다녀오고 새벽3시부터 시작한 산행에서 유기상님을 잃고 산을 내려오면서부터 너무 힘들었습니다. 잠들려하는 기상님을 더 일찍 흔들어깨웠어야했나, 내가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배웠더라면하는 책망이 깊었습니다. 1시간이 넘어서야 헐레벌쩍 달려온 구급대원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친구를 헬기로 보내고 내려오는 북한산 하산길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일을 이렇게 글로 남겨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이제는 담담해 질 수 있어서요.
작년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근 1년 넘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고 피했습니다. 회사에서 만나는 선후배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치료차 방문한 병원의 선생님도 차분히 본인책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임세환님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는데 더 미치고 팔짝칠 정도였습니다.
회사의 선배님들도 그런 말을 하셨어요
"어찌보면 그 친구 참 행복한 거네. 자기 좋아하는 산에 좋아하는 친구랑 가다 좋아하는 산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너무 책망하지 마라. 그러다 네가 몸 상한다"
"네. 그렇게 생각할께요."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 너 죽는게 떄와 장소, 순서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내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네 친구의 운명은 딱 거기까지였어. 친구가 가는길에 외롭지 않게 마지막으로 같이 있는 너를 고마워할꺼야."
'네...."
지금은 이해하고 넘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힘들었습니다. 새벽5시10분 북한산 위문 바로 밑 유기상님과 저만 있었던 그 10분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이, 산으로 올라오는 이 없는 그 10분 동안 유일하게 연결된 119 심폐소생술 신호 "뚜뚜뚜뚜..." 그 신호에 맞추어 30번을 심장을 압박하고 2번을 긴 숨을 내지르는 그 시간이 영화처럼 계속 저를 괴롭혔거든요.
한편, 이런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나코리는 늘 먼저 연락을 해 왔습니다.
"형님 제가 이번에 심리학독서모임을 만들어요.같이 해요,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형님 같이 하실거죠"
"어, 그래"
"형님, 잘지내시죠. 보고싶어요. 언제든 연락줘여"
"어, 그래"
"형님, 나 정말 바쁜 사람이야. 왜 이리 전화가 안돼! 아, 이사람 정말 ..."
"미안해, 내가 연락할께"
"형님, 이번에 토지보상수용재결신청하는데요. 감정평가서 좀 봐 주세요. 이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한번봐줘. 내가 밥 살테니까"
"그래, 한번 보자. 내가 보고 연락줄께"
마음에 티눈 하나였을텐데 너무 오랜 시간동안 붙잡고 있었습니다. 티눈을 빼 내고 앞으로 심호흡을 크게 해보려 합니다. 상처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굳어졌을뿐인데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왔더라고요. 오른쪽 발바닥의 티눈이 있는 채로 절뚝절뚝 그냥저냥 걸어왔듯이 치유되지 않은 마음 그대로 지내왔습니다.
마음의 티눈도 이제 덜어내려 합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코리님이 처음 이야기했던 1월부터 참여했었더라면 어떠했을 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과거로 돌아간다해도 할 수 있었을리는 의문입니다.) 올해의 연말을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시간이 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티눈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제 마음 속 티눈을 보내버리려 합니다. 이제 마음의 안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보고 댓글을 달고 또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싶습니다.
혹여 저처럼 마음속 티눈을 안고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발바닥에 <티눈밴드>붙이듯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써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티눈도 이렇게 덜어낼 수 있습니다.^^ 홀연히 보내버렸으면 합니다. 그렇게 같이 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