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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Dec 31. 2020

죽음을 대하는 자세

<패티아담스>에서 묻고 답하다

죽음이 잘못입니까?뭐가 그렇게 두렵습니까?
왜 죽음을 인간답고 품위있게 대하지 못하나요?
예절바르고 유머있게 대하지 못합니까?

죽음은 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일 병과 싸운다면 가장 지독한 병과 싸웁시다. 무관심.

의사의 사명은 죽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죠.
사람을 치료하면 결과가 어떻게 됐던 이기게 됩니다.

-패치<패치아담스>


2020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날입니다. 채 24시간이 남지도 않았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올해도 마침표를 찍게되네요. 마침표를 찍으면 다시 새로운 한해 2021년이 펼쳐집니다. 단 "하루" 차이임에도 해는 달라집니다. 2020년과 2021년이 그렇습니다.


영화 <패치아담스>에서 길어올리고 밑줄친 문장에서 질문을 뽑아 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음을 인간답고 편하게 대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이네요


아직 가족과의 이별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엄마,아버지,장인어른,장모님 분 모두 생전에 계십니다.
4분 모두 각각 조금 그리고 많이 아프시지만 아직은 저희와 같이 계셔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족과의 이별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죽음>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몇년전 후배 어머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기억납니다. 몇년전이고 저랑 연배차이가 있는 후배이니 그 어머님은 너무 젊으셨습니다. 그 장례식장의 상주인 제 후배는 손님들을 제대로 받지를 못했습니다. 웃음많고 사람좋고 선후배들 잘 챙기는 녀석이었는데 어머님의 죽음앞에 무너져 내렸더라고요. 너무 울어서, 눈물이 그치지를 않아서 장례식장을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앞에 속수무책이었을터라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었죠. 어깨 한번 두들려주고 저도 말없이 왔었습니다.


최근 <심리학독서모임>을 통해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1년이 넘도록 친구의 죽음을 힘들어하고 놀라고 자책하였던 저였습니다. <마음담론>이라는 심리학독서모임을 통해서 한글자 한글자 글을 써가면서 조금씩 내 자신을 놓아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갇혀있어 힘들어 했던 지난 시간들을 놓아주시로 했습니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요. 그날 그 <죽음>의 혀장에서 지금 <삶>의 현장으로 서서히 돌아오려 합니다. 글을 쓰고 돌아보고 오늘 하루를 살면서 값진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작년 6월 30일 친구를 보내고 채 보름이 되지 않아 다시 찾은 적이 있습니다. 파주의 출장길이었고 미안하고 보고 싶어서 보고 왔습니다. 누군가가 꽃을 걸어주었고 한참동안 그저 바라만 보다가 담배 한개비 피고 돌아왔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못하고요. 그날의 기록은 페이스북 비공개로 올려놓았습니다.

2021년 봄날에 다시 갈께요. 잘지내고 있어.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줄께


1년이 지나고 2020.7.16. 페이스북은 1년전 오늘을 알려주었습니다. 올 여름에도 친구를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친구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때문이었을 겁니다. 올 겨울 친구의 <죽음>을 인정하니 차리리 마음이 편해해졌습니다. 아마 이 친구도 제가 자기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좀 재미있는 일, 의미있는 일, 고마웠던 일들을 이야기 해 주길 바랄겁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금의 일들을 자기에게 좀 들려달라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달라고 할 겁니다. 멋진 친구였으니까요. 이제 그럴려고 합니다.


따뜻한 봄날엔 남사스럽겠지만 꽃 한송이 사들고 주고 오려고요. 잘지내고있다고 인사하고 재미와 의미있는 이러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해주렵니다.





오늘의 질문은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죽음을 인간답고 편하게 대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인데요

편할 수 없는 주제인 <죽음>이기에 편해지고 인정해야 <죽음>너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자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죽음을 넘어 오늘을 살아야 발전하는 내일을 맞이 할 수 있을겁니다.


세상과 떠나는 분들, 세상을 떠나는 나는 삶을 발목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생전"이란 말이 있잖아요? 생은 죽음으로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더라고요. 생전. 아직 살아있는동안. 그렇게 인정할 때 오늘이 활기찰 것 같습니다.다.


오늘 2020년을 안녕합니다. 2020년 입장에서는 죽음이 되겠지요. 2020년을 잘 보내줄겁니다. 안녕!


오늘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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