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페친 KTB자산운용 이학구부사장입니다. 마침 신영복쌤 달력이 1부 더 있는데, 받을 주소 보내주세요"
한번뵙지도 못한 분에게서 문자메시지 한통이 왔습니다. 페이스북에 신영복선생님 달력이 있어 판매용인지를 여쭈어보았습니다. 판매용이 아니라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로 온 문자 한통.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12월31일 달력을 받았습니다.
"달력 잘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영복선생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처음처럼 뜨거울 것 같아요. 승승장구하는 2021년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의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행복한 연말연시되십시오.ㅎㅎ"
SNS을 처음시작할때 부터 신영복선생님의 글귀로 함께 매일을 열었습니다.
동국대학교 후문 골목에는 <하얀집>이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동아리모임이나 행사, 친구들 생일이나 과모임 등을 하면 으레 그 술집을 찾았습니다. 한참 술을 먹다 한 선배가 사라집니다. 10여분 쯤 지나면 책을 한권 들고 술집을 들어오죠.
"야. 책좀 읽어. 술 좀 그만 마시고" 툭 던져줍니다.
책은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야기합니다.
"아놔, 형.형들끼리 통일해서 책선물을 하던가. 맨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야. 우리집에 두권 있거든. 하나는 00형이 줬고, 하나는 00형이 줬어. 다른 사람줘ㅎㅎ"
1993년 선배들은 동국대학교 후문에 위치한 <녹두서점>에 내려가 책을 참 많이 사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선배들은 본인들이 한장한장 읽어내려갔던 그 감동을 제게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20년 20일이라는 감옥에서 보낸 선생님의 글은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고 한 해를 보내고 또 보내고 20바퀴, 80번의 계절을 보내고서야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간난아이가 태워나 걸음마를 배우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하교, 수능을 거쳐 대학생이 되어 1학년을 보내고 나서야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상상할 수 없는 세월동안 선생님은 세상을 향한 자그만한 엽서에 한땀한땀 본인의 생각을 적어 보내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군대에 복학하고나서 과 학생회장을 하던 1997년, 그리고 이후 졸업을 할때까지 저도 똑같은 형들의 모습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용돈, 과외비를 받은 날 후문 <녹두서점>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꺼내들어 후배들에게 주고 있었던 것이죠. 다만 제게는 선택의 폭이 조금 있었습니다.
나무야나무야(1996), 더불어숲1,2(1998)
선생님의 책이 몇권 나왔거든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국내 곳곳을 누비면서 성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나무야나무야>, 그리고 해외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펼친 <더불어숲1,2>가 그것이었습니다.
"야, 책 좀 봐. 술 좀 그만마시고" 툭 던져줍니다.
"저, 형만큼 술 안먹거든요. 형이 맨날 제일 먼저 취하면서"
"시끄럽고, 이거 읽어라"
"아놔, 나 이거 있어. 00누나가 사 줬단 말이야. 다른 사람 줘,"
"그래? 그럼 내가 <녹두>에 이야기 놨거든. <나무야나무야> 봤어?"
"아니요.아직"
"그럼. <녹두>에 예쁜 누나에게 이야기 해 놨으니 책 바꿔서 봐. 대신에 오늘 책 더럽게 김치자국 붙이면 난 몰라. 지금 댕겨오던가. 난 선물 해준거다."
그렇게 대학시절에 만난 선생님 책의 인연은 선배들에게서부터 저에게, 다시 후배들에게, 그 후배들이 다른 후배들에게 이어져내려갔습니다. 언제까지 내려갔는지는 알 지 못하지만 참 소중한 선배들에게서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죠.
선생님은 2016년 1월에 세상과 안녕을 고했습니다.
그후 2년 201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온지 30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지 2년쨰 되던 해 인사동의 작은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여섯살 재현이만 데리고 인사동을 찾았고 선생님이 기록해 준 하나하나의 소중한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30주년에서 재현이와 함께(2018.1)
아무것도 모르는 재현이는 아빠를 따라와 1층,2층,3층에 있는 글씨들을 보고 조막손으로 필사를 해보겠다고 했었습니다.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물어보면 아마 기억도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저도 이 녀석에게 책을 건녀주며 이야기할 겁니다. 너 어릴 때 전시회에도 다녀왔었다고 말이죠
2021년 새해새날 페친으로부터 받은 달력을 보고 신영복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뒤돌아보았습니다.